장례식은 이제 일상…옛 무덤 파내 묏자리 만드는 우크라

끊임없이 밀려오는 전사자…효율성 위해 '합동 장례식'
1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무명군인들 무덤에 새 전사자 매장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 언덕에 자리한 리차키우 군 묘지에 러시아에 맞서 전장에 나가 싸우던 두 명의 우크라이나 남성이 나란히 묻혔다. 이날 묘지에 안장된 2명 중 보흐단 디두흐(34)는 지난주 '대반격' 현장인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에서 지뢰를 밟아 숨졌다.

그 옆자리에 묻힌 올레흐 디두흐(52)는 그로부터 사흘 뒤 서부 방공 부대에서 복무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장례식을 진행한 이 지역 그리스 정교 목사는 두 남성의 성이 같고 나이 차가 큰 것으로 미뤄 부자 관계가 아닐까 짐작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들은 생전에 전혀 모르던 사이였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선에 투입됐다가 주검으로 돌아온 이들은 합동 장례식으로 마지막 길을 동행했다.

유족들은 큰 슬픔에 빠졌다. 보흐단 디두흐의 아내인 올레나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기절했다.

가족들은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노란색·파란색 꽃을 무덤 위에 올렸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전사한 군인들의 장례식이 르비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곳곳의 우울한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한 이후 전장에서 사망한 군인들의 장례식이 무수히 진행됐기 때문이다.

전사한 군인들의 장례식이 합동으로 거행되는 것도 특이한 일이 아니다.

전선에서 먼 거리를 이동해 고향으로 돌아오는 전사자들이 계속 늘어 장례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합동 장례식이 이어지고 있다고 NYT는 설명했다.
전쟁 초기에는 이 지역 군 묘역 언덕에 새 무덤들이 일부 모여있는 정도였지만, 약 15개월이 지난 지금은 언덕의 절반 정도가 500여 명의 무덤으로 채워졌다.

르비우시 당국은 최근 군 묘역에서 오래되고 표시가 없는 무덤들을 파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시신들을 묻을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NYT는 "1차 세계대전 등 지난 세기에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이 지금 전쟁에서 전사한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르비우에서 묘 관리를 담당하는 카테리나 하우리렌코는 "작년 여름에는 (전사자들의 무덤이) 정말 적었는데 지금은 정말 많다"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얼마나 더 많아질까"라고 걱정했다.

그는 거의 매일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면서 "대반격으로 많은 젊은이가 사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영국 국방부는 지난 18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전쟁으로 상당한 사상자가 발생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군사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수개월간 포격과 참호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전쟁 사상자 집계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9월 약 6천명의 러시아인이 사망했다고 발표한 이후 집계를 비밀에 부치고 있다.

미국 국방부에서 유출된 문서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우크라이나 사상자는 12만4천500∼13만1천명, 러시아 사상자는 18만9천500∼22만3천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우크라이나 최대 1만7천500명, 러시아 최대 4만3천명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독립언론 '미디어조나'는 BBC 러시아어 서비스와 함께 지역 신문 부고 기사와 묘지 방문 등을 이용해 격주로 독자적인 러시아군 사상자 집계를 내놓는데, 지난주에는 2만5천52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러한 방식으로 전쟁 사상자 규모가 드러나면서 러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부고 기사를 금지한 상황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