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값 안내려요?" 미미한 가격인하 효과에 손님 눈치만

분식집 메뉴판 그대로…"봉지라면 50원 내린들 체감 안돼"
전문가 "식자재 유통 개선하고 인건비 부담 줄여줘야"
"라면 출고가를 내렸다고 하지만 우리는 가격을 내릴 수가 없어요. 다른 재룟값은 안 올랐나요?"
서울 마포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서모(66)씨는 라면값을 내릴 계획이 있는지 묻자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인건비가 없어서 버틸 만하지만 다른 가게들은 다시 음식값을 낮추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가격 인하 계획이 발표된 뒤에도 마포역 인근 분식집의 기본 라면 가격은 대부분 4천원 안팎으로 변화가 없었다. 치즈나 만두·참치를 추가할 때마다 500원씩 더 받았다.

식품업체 대표 브랜드 라면들이 정부 권고에 따라 지난 1일부터 가격을 내리기 시작했지만 실제 분식집 라면값은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난방비와 인건비 등 라면을 끓여 파는 데 다른 비용이 여전히 많이 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하면 라면 가격 인하 폭이 50원으로 미미한 데다 분식집에 봉지라면을 공급하는 중간 유통업체들이 출고가를 아직 조정하지 않은 탓도 있다.
실제로 분식집 생산비용 증감을 가늠할 수 있는 '분식 및 기타 간이음식점' 생산자물가지수는 지난 5월 155.46(2015=100)으로 전월 대비 0.7%,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면 9.7% 상승했다.

분식집들은 대부분 일반 소비자와 다른 경로로 봉지라면을 공급받아 가격 인하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포역 인근의 한 분식집 주인은 "아직 유통업체에서 가격을 낮춘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다.

출고가를 내린다고 해도 저희 입장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홍보본부장은 3일 "자영업자가 제조사에서 제품을 받아보기까지 도매상과 식자재업체 등 여러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인하된 가격을 소비자가 체감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 압박에 라면과 밀가루 가격이 인하된다는 소식이 연일 보도되면서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속앓이만 하고 있다.

생산비용은 거의 변함없는 상황에서 메뉴판 가격을 내리길 바라는 손님들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집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지난달 28일 밀가루 가격 인하로 짜장면과 칼국수 등 가격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그러자 정작 식자재를 공급하는 유통업자들이 가격을 인하하지 않고 있다는 반박 댓글이 달렸다.

한 회원은 "중간상인들이 가격이 올랐을 때 사둔 재고를 소진하지 못했다며 언제 내릴지 모른다고 한다"고 썼다.

외식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근본적으로 식자재 유통과정을 손보고 인건비 부담을 정부가 덜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차 본부장은 "궁극적으로 중간 유통과정을 줄이고 직거래가 활성화된 유통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인건비를 줄일 수 있도록 정부가 키오스크나 서빙 로봇 도입을 지원해주는 정책도 외식 물가를 낮출 수 있는 한 방안"이라고 짚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