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을 심어야죠"…폭우 휩쓴뒤 일상복귀 나선 예천

폐허된 백석마을, 끊긴 길 잇고 산사태 잔해 치우느라 구슬땀
"제 모습 찾는데 최소 2∼3개월"…"밭 망가졌지만 수확 포기 못해"
"힘들지만, 그래도 희망을 심어야죠."
폭우가 한바탕 지나간 19일 오후,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마을.
이곳은 전날 마지막 실종자까지 수습을 마쳐 본격적인 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마을 주민 황보섭(75)씨는 "지하수를 전기로 퍼 올리다 보니 전기가 끊기면서 물도 끊겼었다"며 "다행히 전기도 들어오고 시내버스가 다시 다닌다"고 말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오늘은 들깨밭에 가서 비료를 주려고 한다"며 "많이 망가졌어도 들러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5명이 숨지고 주택 여러 채가 매몰된 백석마을은 이날도 여전히 처참한 모습이었다. 아스팔트가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쓸려 내린 트럭들은 장난감처럼 토사 위를 나뒹굴고 있었다.

폐허처럼 변한 마을이지만 공무원들은 끊긴 길부터 잇느라 여념이 없었다.

마을에서 만난 예천군 관계자 A씨는 "일단은 마을로 올라오는 길부터 임시 조치로 복구하고 있다"며 "오후 3시쯤 복구되는 대로 중장비를 들여 매몰된 소부터 수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백석마을이 제 모습을 찾으려면 최소 수개월은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A씨는 "투입 인력과 장비에 따라 다르겠지만 못해도 2∼3개월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임시 대피소로 쓰이는 백석경로당에는 주민들이 거의 없었다. 전날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아 주민 9명이 병원에 옮겨졌기 때문이다.

경로당을 지키고 있던 김상겸(88)씨는 "오늘은 들깨밭에 들러서 비료를 주려고 한다"며 "밭이 많이 망가지긴 했어도 9월에 수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나는 별로 안 아파서 병원에 가지 않았다"며 너털웃음을 짓기도 했다.

감천면 벌방리 주민들도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지개를 켰다.

이들은 아직 실종자 2명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희망을 심어야지"라며 각자 사과밭에 들렀다. 경북에선 지난 15일 폭우·산사태로 인해 모두 23명이 숨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