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 매트리스에 생명체가 산다면…영화 '다섯번째 흉추'

박세영 감독 장편 데뷔작…독특한 느낌의 영상과 음악
눅눅한 자취방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침대 매트리스.
연인이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거나 이별의 저주를 퍼붓는 자리가 되기도 한 매트리스.
그 매트리스에 생명체가 서식하고 있다면, 그리고 연인이 주고받은 말을 먹고 자란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박세영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 '다섯번째 흉추'는 이런 생각을 기괴한 영상으로 그려낸 독특한 작품이다.

자취방을 떠나는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매트리스를 버리면서 지난날의 부끄러움, 슬픔, 고통도 잊어버리지만, 기실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그의 영혼 어딘가에 남아 있다.

그가 버린 매트리스가 용달차를 타고 도시를 떠도는 것처럼 말이다. '다섯번째 흉추'는 젊은 여성 '결'(문혜인 분)이 남자 친구 '윤'(함석영)의 원룸으로 매트리스를 옮기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곳에서 결은 사랑이 식은 듯한 윤과 말다툼을 하고 헤어진다.

어느 날 윤은 매트리스에서 자다가 이상한 소리를 듣고 이불 밑을 본다. 매트리스에 곰팡이 같은 게 끼어 있다.

연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추적하던 영화는 갑자기 환상적인 장면으로 전환한다.

마치 매트리스 속 생명체의 눈에 비친 걸 보여주는 것 같다. 끈적이는 장소에서 생명체가 꼬물대는 듯한 소리가 관객의 귀를 채운다.

윤이 버린 매트리스는 모텔방으로 옮겨지고, 매트리스 속 생명체는 또 다른 연인 '율'(온정연)과 '준'(정수민)의 대화를 듣는다.

초라한 병실로 옮겨진 매트리스에 죽음을 앞둔 가난한 여인이 누워 혼잣말할 때도, 생명체는 그곳에 있다.
생명체는 사람의 말뿐 아니라 뼈를 몰래 훔쳐 먹으면서 자란다.

이 영화의 제목도 생명체가 처음으로 훔쳐 먹은 뼈가 윤의 다섯번째 흉추라는 설정에서 지어졌다.

로드 무비 형식의 이 영화는 매트리스 속 생명체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인간군상의 모습을 스치듯 비춘다.

어찌 보면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영화는 숨은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쓰기보다는 매트리스 속 생명체의 성장이라는 기발한 발상을 따라가며 독특한 영상과 음향을 체험하는 것도 좋은 감상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매트리스 속 생명체를 표현한 영상과 음악은 기괴한 느낌으로 관객의 뇌리에 남을 만하다.

박 감독은 환풍이 안 되는 반지하 자취방에 살던 시절 벽에 낀 곰팡이를 본 기억에서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 19일 시사회에서 "보기에는 불편할 수 있지만, 끈질기게 살아가려는, 어떻게든 성장하려는 생명체를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 역할의 함석영은 크로스오버 밴드 '만동'의 기타리스트로, 영화의 음악도 맡았다.

이 영화는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코리안판타스틱 장편 감독상 등 3개 상을 받았고 서울독립영화제 장편 경쟁 최우수작품상도 받았다.

올해 초 베를린 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돼 호평받기도 했다. 8월 2일 개봉. 65분. 15세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