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커피는 싸구려? '라까프 팝업'이 보여준 새로운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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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조원진의 공간의 감각
팝업스토어 버블 시대 새로운 생각
신촌에 두 달간 차린 '라까프 팝업스토어'
베트남 커피 문화 알리는 두 청년
식민 시대부터 시작된 베트남 커피 산업
고급 품종과 유기농 커피 농장 등 발굴
책으로 엮고 세계에 알리기 위한 첫 팝업
때는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의 전운 사이 혼란의 시기로, 경제 침체가 미국 기업들의 전략과 미국인들의 소비패턴을 바꾸던 찰나였다. 고속도로를 달려야 마주할 수 있는 지루한 쇼핑의 대명사 타깃이 허드슨강 위에 띄운 도전은 시의적절하게 뉴욕 시민들의 눈길을 끌 수 있었다. 마침 월드와이드웹에 너나 할 것 없이 띄운 팝업 광고가 눈길을 끌던 시기었고, 사람들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첼시의 부두를 빛냈던 이 장소를 팝업-스토어(이하 팝업)라 명명했다.이후 팝업은 유통업체들의 주요한 마케팅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유동 인구가 많은 상업지대의 핵심 공간을 단기간만 임대해, 보통의 매장에서는 할 수 없는 실험적인 시도를 선보이는 것은 브랜드의 이미지를 제고하거나 전환하는데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대 팝업의 시대’가 열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장기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소비 형태가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되는 등 큰 변화가 일었고, 장기 임대를 통한 영구적인 매장 운영이 성공을 담보하는 시대도 빠르게 저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무하는 팝업스토어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도 있다. 단기에 빠른 효과를 누리고자 만든 실험적인 인테리어는 그만큼의 폐기물도 만들어 낸다. 떴다가 사라지는 광고판같이 팝업은 소비자와 장기적인 호흡을 기대할 수 없다. 호기심에 팝업창을 누르던 사람들은, 어느덧 광고판 같은 그 속성에 차단 버튼을 누른다.
인스턴트에 사용되는 낮은 품질의 로부스타가 아닌, 때맞춰 잘 수확하고 가공한 고품질의 로부스타를 가지고 말이다. 또, 스페셜티 등급의 베트남 아라비카 커피도 발굴해 소개하기도 했는데, 이 커피들로 블렌드와 콜드브루, 드립백 등의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베트남인들에게 그들의 커피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는 일이 라까프 최우선의 목표였다.
팝업이 열리는 ‘뉴타운’은 전 세계 크래프트 비어를 소개하는 맥주 전문점으로, 라까프는 이곳과의 협업을 통해 베트남의 크래프트 비어 브랜드를 소개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경제 부흥기를 맞은 베트남에서는 커피뿐만 아니라 술 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라까프의 활동과 베트남 커피를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베트남의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해 그곳의 커피와 술, 문화를 폭넓게 소개하고자 한다.
라까프의 팝업에 베트남에 대한, 커피 산지에 대한 어떤 부채 의식으로 그곳의 커피산업에 관심을 가지자는 거창한 의미는 없다. 다만, 커피를 소비하는 사람이라면 생각해 볼 만한 현실과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좀처럼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동남아시아 경제 부흥국의 새로운 문화를 같이 즐겨보기를 바라는 것이다. 유난히도 더운 여름, 매장 한쪽이 완전히 뚫려있는 이 팝업 스토어에서 어렴풋이 베트남의 향기를 느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달콤하고 고소한, 깊은 쓴맛에 취해 여름의 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더 많은 이들이 이 팝업에 함께 하기를, 팝업으로 말미암은 작은 반향이 더 뜻깊은 공간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