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귀하다' 찬사받은 고려 나전칠기…존재만으로도 주목

고려 때 모란·국화 등 식물무늬 자주 사용…정교한 표현·기법 눈길
2020년에도 日서 나전 합 환수…불교 경전 보관하던 상자는 '보물'
'나전 솜씨가 세밀해 가히 귀하다. ' (螺鈿之工 細密可貴)
1123년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은 고려의 문물과 풍속, 생활상을 정리한 견문록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이같이 기록했다.

고려의 나전칠기가 당대에 이미 명성을 떨쳤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고려 조정에서는 송(宋), 요(遼) 등 주변국에 보내는 선물에 나전 관련 물건을 포함하기도 했다. 나전칠기는 전복, 조개 등의 껍데기를 갈아 얇게 가공한 자개로 무늬를 장식하고 칠을 한 공예품을 일컫는다.

나무와 옻칠, 자개 등이 어우러져 영롱한 빛을 낸다.
고려와 조선 전기에는 모란·국화·연꽃 등의 식물을 표현한 무늬가 주로 쓰였고 조선 중기에는 사군자·화조(花鳥·꽃과 새), 포도 등의 무늬를 많이 다뤘다. 그중에서도 고려의 나전칠기는 정교한 표현과 섬세한 기법으로 주목받아왔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지난 2021년 문화재청의 소식지 '문화재 사랑'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나라에서 우수한 나전칠기가 제작된 시기는 고려시대"라고 설명한 바 있다.

국외소재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지낼 당시 쓴 글에서 그는 고려 나전칠기의 특징으로 자개와 함께 은, 동, 황동 등 금속선을 넝쿨이나 기물의 경계선으로 사용한 점 등을 꼽았다.
최근 1년여 간의 협상을 거쳐 올해 일본에서 환수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이런 특성을 잘 보여준다.

상자에는 고려시대 때 나전 공예품에 많이 쓴 국화넝쿨무늬, 모란넝쿨무늬, 연주(連珠·점이나 원을 구슬을 꿰맨 듯 연결한 것을 뜻함)무늬 등 약 4만5천개의 자개가 표현돼 있다.

이 가운데 꽃무늬를 감싸고 있는 넝쿨 줄기는 가느다란 금속선을 썼고, 두 선을 꼰 금속선을 넝쿨무늬 부분과 연주무늬를 나누는 경계선으로 활용했다.

유물 조사 및 자문에 참여한 박영규 용인대 명예교수는 "넝쿨무늬 잎사귀의 경우 가로 5㎜, 세로 3㎜ 정도로 매우 작은데도 정교하고 표현해 영롱한 색깔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목공예', '한국의 목칠가구' 등의 책을 펴낸 목·칠공예 전문가인 박 교수는 "제작 난이도, 공예기법 등을 볼 때 뛰어난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는 "처음 유물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전 공예 및 옻칠 전문가들에게 사진을 보여줬을 때는 큰 반응이 없었는데, 실제로 보고는 모두 놀라셨다"고 전했다.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비슷한 유물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크다.

고려 나전칠기는 청자, 불화와 함께 고려를 대표하는 예술 공예품으로 꼽히지만, 현재까지 전 세계에 남아있는 유물은 20건이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2020년 일본에서 환수한 '나전국화넝쿨무늬합' 등 3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뚜껑이 있는 그릇 형태의 나전국화넝쿨무늬합은 길이가 10㎝ 정도에 불과한데, 꽃잎 3개를 붙인 모양의 유물은 미국, 일본에 있는 나전 합을 포함해 3점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또 다른 고려 나전인 '나전경함'은 현재 보물로 지정돼 있다.

나전경함은 두루마리 형태의 불교 경전을 보관하던 상자로, 고려 나전경함 중 유일하게 국내에 현존하는 유물로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보물로 지정됐다.

고려 공예예술의 정수로 평가받는 나전칠기는 왜 많이 남아있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나무 즉, 목재를 쓰는 특성상 부서지기 쉽고 보존이 쉽지 않았으리라 본다. 박 교수는 "고려 나전칠기의 경우, 12∼13세기라고 봐도 1천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것"이라며 "석재, 금속 재질과는 달리 손상 위험이 큰 데다 외세의 침입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