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 입고 두 눈 부릅' 사찰 지키던 사천왕상 8건, 보물 된다

문화재청, 구례 화엄사·보은 법주사 등 사찰 유물 보물 지정 예고
부처 가르침·불국토 수호 역할…"전란 이후 불교 부흥 소명 담아"
사찰 입구에서 부처의 가르침과 불국토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전남 구례 화엄사, 여수 흥국사, 충북 보은 법주사, 경북 김천 직지사, 고흥 능가사, 영광 불갑사, 강원 홍천 수타사, 충남 공주 마곡사 등 사찰 8곳의 사천왕상을 보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7일 예고했다.

사천왕은 불교 우주관에서 세계의 가운데에 있다고 여기는 수미산(須彌山) 중턱에 살며 동서남북 네 방위에서 불국토를 지키는 수호신을 뜻한다.

사천왕상은 중심 불당으로 진입하기 전인 천왕문에 두는데 동서남북 방위에 따라 각각 지국천왕(持國天王), 광목천왕(廣目天王), 증장천왕(增長天王), 다문천왕(多聞天王)으로 부른다.
보통 갑옷을 입고 보검(寶劍·보배로운 칼) 등 정체성을 드러내는 물건을 손에 들고, 눈을 부릅뜬 채 입을 벌려 악귀 등으로부터 사찰을 지키는 듯한 독특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국내에서는 보물인 '장흥 보림사 목조사천왕상', '순천 송광사 소조사천왕상', '완주 송광사 소조사천왕상' 등 3건을 포함해 약 20건이 남아있는 것으로 전한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8건은 모두 17세기에 만들어진 사천왕상이다.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과 '여수 흥국사 소조사천왕상'은 임진왜란 등 전란 이후 벽암 각성(1575∼1660)와 계특((戒特) 대사 등이 사찰을 복구하면서 조성한 것이다.
두 사천왕상 모두 의자에 걸터앉은 모습이며, 사각형의 주름진 큰 얼굴과 넓고 두텁게 표현된 콧방울 등이 같은 지역에서 나타나는 17세기 전반기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발밑에 악귀와 같은 생령(生靈)이 없는 게 특징이다. '보은 법주사 소조사천왕상' 역시 전란 이후 조성됐으며, 17세기 중엽에 완성했으리라 추정된다.

국내 사천왕상 중에서는 매우 드문 입상 형태이며, 크기가 5.7m에 이른다.

특히 법주사 사천왕상 발밑에는 생령으로 청나라 관리와 조선 관리를 둬 1636년 발생한 병자호란의 치욕을 극복하고 교훈을 주고자 한 최초의 조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천 직지사 소조사천왕상'은 조선 후기 사천왕상으로는 드물게 발원문이 발견돼 1665년 완주 송광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조각승을 모셔 조성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또, 사천왕상과 함께 방위가 적힌 묵서가 발견돼 각 천왕의 방위도 파악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직지사 사천왕상은 발원문을 통해 호남과 영남 조각승의 불상 제작과 교류 활동도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같은 전남 지역 내 화엄사, 흥국사와는 다른 양식을 보이는 '고흥 능가사 목조사천왕상'은 동방지국천왕과 북방다문천왕, 남방증장천왕과 서방광목천왕의 순서를 각각 바꾼 점이 특징이다.
'영광 불갑사 목조사천왕상'은 나무 조각을 접목해 전체 형태를 만들고 동시에 머리카락이나 세부 장식 등은 흙으로 정교하게 빚어 소조상에서 목조상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특성을 보인다.

문화재청은 보물 '영광 불갑사 불복장 전적' 중 사천왕상에서 나온 유물을 사천왕상과 함께 관리하기 위해 일부를 해제한 뒤 '영광 불갑사 목조사천왕상 및 복장전적'이라는 명칭으로 관리할 방침이다.

강원도에서 전하는 유일한 사천왕상인 '홍천 수타사 소조사천왕상'은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사천왕상이라는 점에서 조각사 연구에서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주 마곡사 소조사천왕상'은 1683년 조성된 사천왕상으로 17세기 사천왕 도상 및 조각 유파의 활동 범위, 불상 제작 방식과 제작 순서 등을 연구할 수 있어 학술 가치가 크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사천왕상은 전란 이후 사찰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불교 부흥이라는 소명을 담아 17세기에 집중적으로 조성됐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에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사천왕상 8건의 보물 지정을 확정할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