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탄소중립 청구서' 날아올라…선거 앞두고 각국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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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에 탄소중립 비용 치솟자 주요국 속도조절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체결 이후 주요국들은 경쟁적으로 ‘넷제로’(탄소중립)를 정책 목표로 내걸었다. 대중이 ‘지구온난화 방지’라는 대의명분에 열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1년 “탄소중립 달성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과 감내해야 할 불편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넷제로를 덜 지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코노미스트의 ‘예언’은 현실이 되고 있다. 탄소중립을 법제화하면서까지 앞장섰던 스웨덴이 방향을 선회한 것은 다른 주요국에 ‘탄소중립 숨고르기’를 위한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75조달러 청구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선거와 각종 정치적 공방에서 항상 주변부에 머물렀던 기후위기 의제가 최근 글로벌 정치권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고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비용이 예상외로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각국 정치인들이 유권자 표심을 고려해 숨고르기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는 향후 30년간 전 세계 정부가 탄소중립 달성에 들여야 하는 비용을 275조달러(약 37경원)로 추산했다.세계 각국은 2015년 지구 온도 상승을 2도 이내로 막자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 합의했다. 이후 각국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시간표를 제시했다. 미국과 영국 등 대부분의 나라는 자국의 탄소 순배출량을 없애는 시기를 2050년으로 설정했다. 스웨덴은 2045년을 목표로 제시하고, 2017년 세계 최초로 이를 법제화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스웨덴 정부는 전날 발표한 2024년 예산안으로 기후변화 대응에서 한발 물러섰다. 내년 기후 대책 관련 예산안을 2억5900만크로나(약 310억원) 삭감하고, 유류세 감면 등으로 내연기관 자동차를 타는 국민의 지갑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이는 내연기관차 교통량을 늘리고 친환경 전기자동차로의 전환을 늦춘다는 점에서 반(反)기후적 조치다.스웨덴 정부는 “예산안에 명시한 19개의 기후변화 대응 목표 중 운송 부문 탄소 배출량 감축 등을 포함해 7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시한 내 탄소중립 달성이 어렵다는 점을 시인했다. 작년 출범한 스웨덴 우파 정부는 올해 8월엔 “기후변화 대응책의 일환으로 신규 원자로 10기를 더 짓겠다”며 43년 만에 탈(脫)원전 기조를 철회했다. 탄소 배출이 없으면서도 신재생에너지 발전 등에 비해 훨씬 저렴한 전력원으로 원자력발전을 택한 것이다.
○여론 의식한 일보후퇴
스웨덴 정부의 발표가 있던 날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휘발유·경유차 신차 판매 금지 시기를 기존 2030년보다 5년 미룬 2035년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로이터통신은 “내년으로 예정된 조기 총선에서 승기를 잡기 위한 결정”이라며 “국민들은 탄소중립이라는 장기적 의제의 당위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관련 비용 증가 등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서는 태도를 바꾸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지난달 영국에서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71%로 집계됐다. 하지만 ‘2030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에 반대하는 응답률은 47%로 찬성률(42%)을 앞질렀다.이 같은 양상은 세계적으로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독일에서는 내년부터 가정용 화석연료 보일러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이 채택된 뒤 연립정부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반면 연정의 과도한 기후대응 정책에 반대하는 독일을위한대안당(AfD)의 지지율은 꾸준히 상승해 지난 18일 기준 2위(22%)로 올라섰다. 네덜란드에서도 정부가 2019년 가축농가 질소 배출 규제를 도입하자 이를 비판하기 위한 정당 농민시민운동(BBB)이 만들어졌고, 창당 4년 만에 지지율 10%대를 기록했다.미국 공화당도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기후변화 정책 완화를 핵심 선거 전략으로 삼고 있다. 공화당 대표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핵전쟁 위협이 지구온난화 위험보다 훨씬 크다”며 조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 아젠다를 비판하고 있다. 스티브 애크허스트 기후변화 전문 여론조사 분석가는 “미국에서는 기후 의제가 정치적으로 더욱 양극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리안/오현우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