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계 3만명 가까이 대탈출…주유소 폭발피해는 더 커져(종합)

분쟁지역 내 아르메니아계 주민 4분의 1 가까이 떠나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와 영토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 일대를 장악한 이후 이 지역을 떠나 본국으로 들어온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의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6일(현지시간)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정부는 이날 오후 8시 기준으로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떠나 자국에 입국한 아르메니아계 이주민은 2만8천120명이라고 밝혔다.

나고르노-카라바흐에 살고 있던 아르메니아계 주민 수가 12만명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지난 19일 아제르바이잔이 이 지역 아르메니아계 자치세력과 무력 충돌을 벌여 사실상 통제권을 장악한 지 1주일 만에 전체 인구의 4분의 1 가까이가 삶의 근거지를 떠난 셈이다.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벗어난 아르메니아계 이주민 수는 전날 오전 1시 1천850명에서 같은 날 저녁 시간대에는 6천500명까지 뛰더니 이제는 3만명 가까운 규모까지 급증했다. 주민들은 소지품만 챙긴 채 트럭과 버스 등에 간신히 몸을 싣고 빠져나오느라 혼란스러웠고, 아르메니아로 향하는 도로마다 이주민들을 태운 차량 행렬이 몰리면서 혼잡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피란 과정에서 차량에 연료를 공급하던 한 주유소 연료탱크가 폭발하는 사고까지 터져 현장은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폭발 사고는 전날 나고르노-카라바흐 중심 도시인 스테파나케르트 외곽의 한 주유소에서 일어났다. 연료탱크가 폭발하면서 이주민들을 태운 채 연료를 넣으려던 차량에도 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폭발 사고 직후 현지 소식통들은 부상자가 수십명에 이른다고 알렸지만, 피해 규모는 가파르게 커지는 양상이다.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은 이날 오후까지 이 사고에 따른 사망자 수가 125명에 이른다고 아르메니아 보건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사고 하루 뒤인 이날 낮 시간대에 아르메니아계 자치세력은 폭발 사고 사망자가 20명 이상이며 병원에 입원한 부상자는 290명 정도라고 밝혔으나 수 시간 만에 사망자 수가 급증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자치세력을 형성하고 군대를 운영해온 지역이다.

국제적으로는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인정되기 때문에 이 지역을 통제하려는 아제르바이잔과 자치세력 사이에서는 무력 충돌이 이어져 왔다.

지난 19일 아제르바이잔이 나고르노-카라바흐 내 자치세력 군사시설 등지를 포격하자 자치세력은 휴전에 동의했다.

공습을 단행한 아제르바이잔에 자치세력이 백기를 든 상황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제르바이잔은 자치세력의 군대를 무장해제하되 현지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제안을 하고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은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지역 재통합'을 추진하겠다는 아제르바이잔의 계획이 사실상 아르메니아계 출신자들에 대한 불이익과 보복, 차별 등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 속에 아르메니아로 대거 입국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의 피난을 허용하면서도 무력 분쟁에 가담했던 사람을 이주 행렬에서 걸러내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AFP 통신은 나고르노-카라바흐와 아르메니아를 잇는 라친 통로에서 아제르바이잔 당국이 검문 초소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피난민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어린이와 노인, 여성은 신원 확인 대상에서 제외하고 20∼30대 남성이 주로 신원 확인 대상이 되고 있다고 통신은 보도했다. 아제르바이잔 정부의 한 관계자는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무력 분쟁에 참여했던 아르메니아계 사람들이 무장을 해제하면 사면할 계획이지만 그 전에 우리에게 신병이 넘겨져야 한다"고 통신에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