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러 헝가리·슬로바키아의 'EU 몽니'…우크라전 변수되나

오르반 이어 피초 신임 총리, EU 우크라 추가지원에 반대
EU 단일 대오 '흔들'
유럽연합(EU) 회원국인 헝가리와 슬로바키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에 어깃장을 놓으며 러시아를 억제하려는 EU의 단합을 위협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 등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친러 성향의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와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신임 총리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500억 유로(약 71조4천억원) 규모 장기 지원 패키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르반 총리는 EU 지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고, 피초 총리는 우크라이나의 높은 부패 수준을 이유로 들며 추가 지원에 반대했다고 폴리티코가 EU 당국자를 인용해 전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금을 포함하는 EU의 2024~2027년 예산안 수정을 위해선 27개 회원국 모두의 찬성이 필요하다. EU의 재정·군사적 지원은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의 20개월에 걸친 방어전에 결정적 도움이 돼왔다.

하지만 공공연히 러시아 지지 입장을 밝혀온 오르반 총리와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을 공약으로 지난달 총선에서 승리한 피초 총리의 '몽니'로 EU의 단일대오가 흔들리고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피초 총리는 이날 EU 정상회의에 앞서 슬로바키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완전한 평가 없이는 우크라이나 지원이나 러시아 제재를 위한 새로운 조치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오르반 총리도 브뤼셀에서 헝가리는 러시아 및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명확하고 투명한 정책"을 갖고 있다면서 "러시아와의 모든 소통 채널을 계속 열어둘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EU 국가들의 비난에도 대러 우호 노선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발언이었다.

극우 성향의 오르반 총리는 그동안 EU가 러시아에 제재를 부과할 때마다 앞장서 제동을 걸면서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앞서 지난 17일 중국에서 열린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정상 포럼을 계기로 푸틴 대통령과 회동해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내부에서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예상됐던 일이긴 하지만 피초 총리의 입장도 다른 EU 지도자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EU·나토 회원국이면서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슬로바키아는 그동안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우군이었다.

러시아의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제일 먼저 지원했고,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을 위해 국경도 개방해왔다.

그러나 친러 성향의 피초 총리가 집권하면서 우크라이나 지원 기조가 크게 바뀌고 있다.

피초 총리는 지난달 30일 총선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공약을 앞세워 승리했다.

그는 선거 유세에서 "우크라이나에 단 한 발의 탄약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강력한 '반러 친우크라'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발트해 연안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제동이 걸리는 상황에 우려를 표명했다.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일부 국가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잔혹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정권(푸틴 정권)에 추파를 던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라면서 "이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다른 EU 파트너들에게도 매우 잘못된 메시지"라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한 EU 고위 당국자도 "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 전개"라면서 "실질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