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알시파 병원, 공동묘지 돼가고 있다"…의료진은 대피 거부

WHO 대변인, BBC 인터뷰서 밝혀…전력 끊기며 미숙아 등 사망도 잇따라
병원장은 "최근 32명 사망…이스라엘은 환자 대피 관련 응답 없어"
이스라엘군은 병원 입구까지 진격해 하마스와 교전 중
이 총리 수석고문 "하마스, 위기 보여주는 사진 원해 병원 참상 방치"
이스라엘군의 군사목표물이 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내 최대 의료시설 알시파 병원의 상황이 묘지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스라엘은 이 병원 지하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핵심 지휘시설이 있다면서 병원 내 민간인에 피란을 권고해 왔지만, 병원 측은 중환자 등이 많아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런 와중에도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병원 피해 상황 등을 놓고 공방을 벌이며 정작 인도주의적 위기는 외면하는 모양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크리스티안 린드마이어 대변인은 14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 인터뷰에서 알시파 병원의 상황이 "거의 묘지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병원 주변에는 처리될 수 없거나 매장 혹은 일종의 영안시설로 옮길 수도 없는 시신들이 널려 있다.

이 병원은 더는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력공급이 끊기고 비축했던 연료가 고갈돼 비상발전기조차 돌리기 힘들어지면서 알시파 병원에선 희생자가 속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구호단체 액션에이드는 인큐베이터 가동이 멈추면서 11일 이후 신생아 3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린드마이어 대변인은 이 밖에도 신장 투석이 필요한 환자 45명이 더는 처치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알시파 병원의 모하메드 아부 셀미아 국장은 신생아 3명과 산소부족으로 숨진 3명을 포함, 최근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수가 32명에 이른다면서 신장 투석을 받지 못하는 환자 중 여럿이 앞으로 이틀 내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군이 미숙아와 환자의 피란을 위해 접촉해 왔느냐는 질문에는 "그들은 그런 연락을 해 오지 않았다"며 "대신 우리가 연락했으나 현재까지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현재 병원 내에는 150구의 시신이 있고 매장할 상황이 되지 못하는 가운데 개들이 시신을 훼손하는 일조차 벌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마스의 통제를 받는 가자지구 보건당국의 마르완 알바르시 박사도 알시파 병원 마당에만 '100구 이상의 시신'이 쌓여 있다면서 연료 고갈로 영안실 냉각기가 멈춘 것이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발전시설을 겨냥한 이스라엘 점령군이 전력을 차단하면서 시신이 분해되고 썩어 벌레가 기어 나오는 게 보일 지경"이라면서 "시신 매장을 허락받으려 점령군과 조정을 시도했지만 병원 밖에 나가는 사람은 누구든 곧장 총에 맞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료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MSF) 소속의 한 외과의는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상황이 매우 나쁘다.

이건 비인간적이다"면서 "병원 내엔 전력도, 물도 없다"고 적었다.

그러나 알시파 병원 의료진은 중환자들을 남겨두고는 갈 수 없다며 이스라엘군의 대피 명령을 거부 중이라고 가자지구 보건당국의 무니르 알부르시 박사는 전했다.

알부르시 박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문제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다.

그들을 남겨둔다면 죽을 것이고, 이송한다고 해도 가는 길에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목격자들은 알시파 병원 출입구 바로 앞까지 이스라엘군의 탱크와 장갑차들이 전진한 가운데 거센 공습이 진행되고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3일 백악관에서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병원은 보호받아야 한다"면서 "병원과 관련해 덜 방해적인(intrusive) 행동이 있기를 희망하고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스라엘 측은 알시파 병원의 참상이 하마스가 국제여론전의 일환으로 연출한 모습에 불과하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수석 고문인 마크 레게브 전 주영 이스라엘 대사는 BBC 인터뷰에서 "그들은 위기를 보여주는 사진들을 원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미숙아들의 목숨을 구하려 발전기용 연료를 제공했지만 하마스가 이를 막았다는 주장이다.

그는 "누구도 이 아기들이 해를 입는 걸 보길 원치 않는다"면서 하마스가 알시파 병원 지하에 의도적으로 군사시설을 지은 데 이어 이제는 "이 아기들을 군사장비와 병력 등을 지키는 방패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마스의 통제를 받는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지난달 7일부터 이달 13일 사이 가자지구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수가 1만1천240명에 이른다면서 이들 대다수가 어린이(4천630명)와 여성(3천130명)이라고 밝혔다.

숫자의 진위를 확인하긴 어렵지만, 마거릿 해리스 WHO 대변인은 "우리는 이 숫자를 확신한다"면서 재차 즉각적 휴전을 촉구했다.

다만 그는 "현재는 큰 혼란과 인명손실 탓에 우리가 듣는 모든 숫자는 추세를 반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여지를 두는 모습도 보였다.

1946년부터 운영돼 온 가자시티 도심의 알시파 병원에는 현재 600명의 환자와 200∼500명의 의료진, 1천500여명의 피란민이 머물고 있다. 이곳 주변과 지하에 하마스 주요 군사시설이 밀집해 있다고 주장해온 이스라엘군은 현재 병원 바로 앞까지 도달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으나, 하마스와 병원 측은 환자들이 '인간방패'로 쓰인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해 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