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자국 투자 가로막는 인도네시아 정부

지난달 2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주인도네시아 미국상공회의소(암참) 행사에 여당 대선 후보인 간자르 프라노워 주지사가 등장했다.

그는 "투자자들의 가장 큰 걱정은 확실성의 문제"라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불법 수수료를 근절하고 법 집행과 행정에서 확실성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행정이나 법 집행의 일관성을 지켜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고 강조한 것인데, 유력 대통령 후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인도네시아 정부의 일관성 없는 행정이 기업투자 환경에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인도네시아는 공급망 재편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중국 대체지를 찾는 기업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전 세계 4위의 인구를 바탕으로 한 노동력과 내수시장 그리고 풍부한 자원과 높은 경제성장률, 민주주의 체제와 인도·태평양 중앙에 있는 지리적 위치도 매력적인 요인이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인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미덥지 않아 투자를 망설이게 한다고 말한다.

투자 전에는 모든 것을 해 줄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 투자가 이뤄지면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행정 처리가 늦는 것은 물론 각종 허가를 받을 때마다 노골적인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국제투명성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인도네시아의 부패인식지수(CPI)는 34점으로 180개국 중 110위를 기록했다.

중국(45점)은 물론 동남아시아의 경쟁국인 말레이시아(47점), 베트남(42점), 태국(36점)보다도 낮다.

싱크탱크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기업 환경 평가에서도 82개국 중 58위를 기록해 인도(50위), 베트남(45위), 태국(33위) 아래였다.
실제로 롯데케미칼은 인도네시아에 39억달러(약 5조원)를 투입해 석유화학단지를 조성 중이지만 건축허가와 환경영향평가 등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현대차는 당국의 전기차 현지화 지원 정책을 믿고 전기차 생산 공장과 배터리 공장을 지었다.

그러나 최근 수입 전기차에도 각종 세제 혜택을 주는 방향이 검토되면서 입장이 난처해졌다.

이 때문에 지난 9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만나 한국 기업들의 어려운 사정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런 일은 정부 간에도 벌어진다.

인도네시아는 한국 정부와 KF-21 공동 개발을 약속했지만 약 1조원에 이르는 분담금을 연체 중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들지만, 그 사이 미국이나 프랑스산 전투기 도입을 결정했고, 카타르서 중고 전투기를 수입하기도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은 물론 정부 간 계약마저 이렇게 지키지 않으니 중견 중소기업들 입장에서는 '정부 리스크'로 인해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

이는 인도네시아 스스로 발등을 찍는 일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는 자카르타에서 칼리만탄섬 누산타라로 수도를 옮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전체 사업비의 20%만 정부 재원으로 감당하고 나머지는 민간 투자를 받는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투자자 모집에 애를 먹고 있다.

내년이면 임기가 끝나는 현 정부의 사업이 차기 정부에서도 계속될 것이란 확신이 없어 관망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문제는 인도네시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개발도상국은 물론 한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크게 바뀌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눈치에 투자를 망설이게 된다. 인도네시아만 손가락질할 수 없는 이유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