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악어의 눈물' 뒷말…"전쟁엔 언제나 비극" 우크라 동정(종합)

G20 정상회의 화상설전…서방정상들이 면박주자 짜증
"충격적 민간인 학살" 가자지구 들어 서방 '이중잣대' 지적도
주요 20개국(G20) 화상 정상회의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비판을 받자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을 언급하며 서방이 이중 잣대를 쓴다고 비난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따르면 22일(현지시간) 인도 주재로 열린 화상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서방 지도자들의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비판을 처음으로 받자 짜증을 감추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화상 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서방 지도자들과 이례적으로 마주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9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는 불참하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파견했다. 그는 2019년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의 이후 이 행사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 연설을 통해 "일부 동료(정상)는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계속되는 러시아의 침략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면서 "군사 행동은 항상 개인과 가족, 국가 전체에 비극"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은 그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일컬을 때 전쟁 대신 써온 '특별군사작전'이라는 용어 대신 '전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전쟁과 사람들의 상실이 충격적이라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2년을 향해가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참화가 러시아의 침공 탓이라는 서방의 시각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푸틴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을 언급하며 이 전쟁에 대한 서방의 대응이 이중 잣대라고 역습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가자지구 내에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를 충격적이라고 표현한 뒤 서방이 이 침략을 못 본 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을 언급한 것은 최근 푸틴과 다른 러시아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서방을 비난하고 자국 밖으로 관심을 돌리기 위해 써온 전술을 반복한 것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반드시 중단돼야 하는 비극이라며 러시아가 평화 협상을 "거부한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날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고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군대를 철수하라고 촉구했다.

숄츠 총리는 베를린에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고 밝혔다.

멜로니 총리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한 푸틴 대통령의 제안을 환영한다면서도 "우크라이나에는 공격자와 공격을 받은 쪽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전문가들은 푸틴의 이번 발언을 진정성이 없다며 일제히 비판했다.

미국 국제정치학 전문가인 제이슨 제이 스마트는 푸틴이 '악어의 눈물'(위선적인 동정)을 흘리고 있으며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분쟁 대상 영토를 강제로 양도해야 할 수도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거짓말 전략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스마트는 "푸틴은 숨 쉬듯이 거짓말을 한다"며 "푸틴의 제안은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협상을 압박하도록 부추기기 위한 전술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정부를 전복시키고 영토를 점령하겠다는 그들의 목표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밝혀왔다"며 "러시아는 '협상'을 병력과 장비 조정의 기회로 이용해 결국 핑계를 찾은 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재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러시아·유라시아 담당 부국장 오리시아 루체비치는 푸틴이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추구하고 있다"며 그가 선의로 협상할 것이라고 믿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루체비치는 "푸틴은 전쟁을 일으켰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으며 서방과 우크라이나를 과소평가했다"며 "그는 이제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고 물러서지 않는다.

러시아는 내년에 국방비를 70% 늘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긴 전쟁은 푸틴 정권의 생존 전략"이라며 "억압과 총동원령을 통해 그가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마크 카츠 미국 조지메이슨대 공공정책 대학 교수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자고 한 이유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을 내놨다.

카츠 교수는 "푸틴이 진심으로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진정한 표시일 수 있는데 이 경우는 아마 전쟁 비용의 증가 때문일 것"이라며 "두 번째는 서방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군사 지원을 줄이고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세력이 생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라고 이 두 가지 가능성을 설명했다.

카츠 교수는 "푸틴은 전쟁을 끝내고 싶지만, 러시아에 유리한 조건으로 끝내고 싶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이 '전쟁'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군 무기 및 군사 장비 중앙 과학 연구소의 사라 애슈턴 시릴로는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끝내고 싶다는 데에 "진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푸틴이 전쟁을 끝내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을 철수시키고 크림반도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불법적 주장을 그만두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