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비상사태' 에콰도르서 최소 10명 피살…갱단무력화 명령(종합3보)

TV 생방송 중 괴한들 난입…대법원장 자택 앞 폭탄테러에 경찰 최소 7명 피랍
주변국 긴장… 페루 국경지역에 비상사태, 미국도 "극도로 우려"
최근 수년 새 치안이 극도로 나빠진 남미 에콰도르에서 갱단의 공격으로 10여명이 숨지는 등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대법원장 자택 앞 폭탄 테러, 무장 괴한들의 TV 방송국 난입, 경찰관 피랍, 수감자 탈옥 등 무법 폭력의 물결이 전국 곳곳을 뒤덮으며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AFP 통신은 9일(현지시간) 오후 에콰도르에서 갱단 공격으로 적어도 10명이 사망했다고 경찰을 인용해 보도했다.

에콰도르 최대 도시 과야킬에서 8명이 피살되고 3명이 부상했으며 인근 도시 노볼에서는 경찰관 2명이 괴한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이날 오후 과야킬에 있는 TC텔레비시온 방송국에 10여명의 무장 괴한이 침입했다.

두건과 마스크로 얼굴 대부분을 가린 이들은 뉴스 생방송 중인 스튜디오에 뛰어 들어가 방송 진행자와 스태프 등에게 총구를 겨눴다.

괴한들은 카메라에 수류탄을 내보이거나 방송국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의 상의 주머니에 폭발물을 집어 넣는 행동도 했다.
이 급박한 상황은 일부 그대로 중계됐고,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미디어에도 관련 영상이 퍼졌다.

에콰도르 대통령실은 사건 직후 보도자료를 내 "다니엘 노보아 대통령은 오늘 에콰도르가 내부 무력충돌 상태임을 선포하는 긴급 행정명령에 서명했다"며 "대통령은 폭력 집단을 무력화하기 위한 작전을 수행하도록 군 등에 명령했다"고 밝혔다.

노보아 대통령은 갱단을 가리켜 "테러조직이자 호전적인 반국가 세력"이라고 비판했다. 에콰도르 군과 경찰은 현장에 급파돼 진압 작전을 펼쳤고, 1시간여 만에 관련자 13명을 체포한 뒤 상황을 마무리했다고 전했다.

에콰도르 경찰은 소셜미디어에 "경찰의 즉각적인 개입을 통해 이번 범행과 관련한 피의자 신병과 증거물을 확보했다"며, 손이 결박된 채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남성들의 사진을 함께 게시했다.
에콰도르 내 폭력 사태에 주변국들도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알베르토 오타롤라 페루 총리는 이날 에콰도르와 접한 북부 국경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군 병력도 추가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방장관과 내무장관도 군과 경찰이 원활히 협조할 수 있도록 북부 접경지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도 에콰도르 폭력 사태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브라이언 니콜스 국무부 서반구 담당 차관보는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에 올린 글에서 에콰도르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과 납치에 대해 극도로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콰도르 주재 중국 대사관과 총영사관은 추후 공지가 있을 때까지 10일부터 일시적으로 폐쇄된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노보아 대통령이 최근의 치안불안과 관련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지 하루 만에 방송국 피습 등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다.

앞서 노보아 대통령은 '로스 초네로스' 갱단 수괴인 아돌포 마시아스 탈옥을 계기로 전날에 60일 기간으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경에 강력한 치안 유지를 지시했다.

주민들에게는 통행금지(오후 11시∼ 다음 날 오전 5시)도 명령했다.

그러나 에콰도르 내 사회 혼란은 더 가중하는 모양새다.

이날 새벽 쿠엥카에 있는 이반 사키셀라 대법원장 자택 앞에서는 폭발 사건이보고 됐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

사키셀라 대법원장은 "명백한 테러 행위"라며 "나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엘우니베르소는 보도했다.

간밤에 키토 도심에서도 적어도 5차례의 폭발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경찰은 확인했다.

과야킬, 에스메랄다, 로하, 엘구아보 등지에서는 차량 방화와 총격 사건이 이어졌다.

마찰라와 키토에서는 경찰관 최소 7명이 피랍됐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번호판을 떼어낸 차량으로 이동하던 괴한들이 경찰관들을 붙잡은 뒤 강제로 어딘가로 끌고 갔다고 한다.
이날 새벽에는 또 다른 수감자 탈옥도 보고됐다.

탈옥수 중에는 디아나 살라자르 검찰총장에 대한 테러를 계획한 혐의로 수감됐던 '로스 로보스' 갱단 두목급 범죄자, 파브리시오 콜론 피코 수아레스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SNAI에 따르면 마시아스 탈옥을 전후로 에콰도르 24개 주 중 6개 주에 있는 교도소에서 폭동이 발생했는데, 일부 시설에서는 교도관이 한때 인질로 잡히기까지 했다.

이들의 폭동은 대부분 진압됐다.

탈옥한 수감자들의 행방을 쫓고 있는 에콰도르 당국은 일련의 공격 앞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방침을 강조했다.

노보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동영상 연설에서 "모든 에콰도르 국민이 평화를 되찾을 때까지 테러리스트와 협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 세계 주요 코카인 생산국인 콜롬비아와 페루 사이에 끼어 있는 에콰도르는 몇 년 새 유럽과 북미로 가는 마약 거래 통로로 이용되며 갱단 간 분쟁의 한복판에 놓였다. 그러면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살인과 납치 등 강력 사건 발생 빈도도 크게 늘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