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세한도'·귀한 고려 불화…함께할 때 더 빛나는 '나눔'(종합)

국립중앙박물관, 새 단장한 기증관 재개관…19년 만에 전시 개편
도자·서화 등 1천671점 한자리에…현대 작가 기증품도 첫 공개
"문화재란 결국 국가의 것이지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국가에 돌려준 것뿐이다.

"
독립운동가 이원순(1893∼1993) 선생은 국내외에서 수집한 도자기, 석기 등 문화유산 40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며 이렇게 말했다.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던 그에게 우리 문화유산은 지켜야 할 '나라' 그 자체였다. 한 명의 수집가를 넘어 많은 사람과 문화유산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마련된 국립중앙박물관의 기증관이 새 단장을 마치고 12일 공개된다.

2005년 서울 용산으로 박물관을 이전해 조성한 기증관 이후 약 19년 만의 개편이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기증관 재개관을 하루 앞둔 11일 열린 언론 설명회에서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소중한 기증품을 한자리에 모은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약 2천129㎡(약 644평) 규모의 기증관은 주제별로 나눠 다양한 유산을 소개한다.

기존에는 '이홍근실', '박병래실' 등 기증자의 이름을 딴 전시실 11곳을 운영했다면, 새로운 기증관에서는 총 1천671점, 114명이 기증한 문화유산을 다룬다.

김혜경 학예연구관은 "기증품을 단순히 소개, 나열하는 것을 넘어 기증받은 유물에 담긴 서사에 주목하면서 문화유산 나눔의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기증관에서는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의 걸작이 관람객을 맞는다.

미술품 소장가 손창근 씨가 기증한 국보 '세한도'(歲寒圖·정식 명칭은 '김정희 필 세한도')와 윤동한 한국콜마홀딩스 회장이 기증한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가 5월 5일까지 공개된다.

세한도는 1844년 당시 59세의 추사가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그린 그림으로 자신이 처한 물리적, 정신적 고통과 메마름을 먹과 거친 필선을 이용해 사실적으로 표현한 대표작으로 꼽힌다.

손창근 씨는 개성 출신 실업가인 부친 손세기(1903∼1983) 선생과 자신이 대(代)를 이어 모은 이른바 '손세기·손창근 컬렉션' 300여 점을 박물관에 기증한 바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 번호로는 '증 10000',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수월관음도는 불경인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나오는 관음보살의 거처와 형상을 묘사한 회화로, 윤 회장은 2016년 일본의 소장가로부터 이를 사들여 박물관에 기증했다.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는 전 세계에 46점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증관 곳곳은 문화유산 기증의 의미와 가치를 헤아려 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2022년 12월 먼저 문을 연 '기증 오리엔테이션 공간'(기증Ⅰ실)이 기증 관련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도입부 역할을 한다면, 이어진 Ⅱ∼Ⅳ실은 다양한 기증품의 매력을 선사한다.
1987년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이 기증한 '철종비 철인왕후 추상 존호 옥책(玉冊)',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회가 기증한 고려 나전경함 등을 만날 수 있다.

이와 함께 4차례에 걸쳐 총 1만202점의 문화유산을 기부한 동원(東垣) 이홍근(1900∼1980), 평생에 걸쳐 조선의 청화백자를 지키고 수집한 의사 박병래(1903∼1974) 등 기증자의 사연도 소개된다.

전통 미술품에서 받은 영감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작품도 만날 수 있다.

1957년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국제판화전'에 전시된 이후 미국 록펠러재단이 기증한 현대 판화 작품 등은 박물관 전시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것이다.
박물관은 관람객이 쉽고 편안하게 기증관을 관람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투명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활용해 전시품을 배경 영상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고, 2월부터는 인공지능 전시 안내 로봇 '큐아이'가 전시 구성을 설명할 예정이다. 윤성용 관장은 "국립박물관의 소장품 40여 만점 가운데 기증품은 5만여 점"이라며 "많은 사람이 쉽고 재미있게 박물관을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