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축구 '최전선' 유럽팀이 보여준 미래…부러운 '상업화 전략'

딜로이트 보고서 발표…2022-2023시즌 유럽 15개팀 평균 62억원 수입
'여성 팀' 특성 살려 각종 후원 계약…FIFA가 강조한 '상업화' 실현
여자축구 스타 지소연(33)이 국내 무대를 떠났다. 지난 25일 시애틀 레인(미국)에 입단한 지소연이 마지막으로 국내 공식 석상에서 남긴 말은 실업축구 WK리그에 대한 '쓴소리'였다.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회장으로서 WK리그의 경쟁력 확충이 필요하다고 역설해온 지소연은 지난달 한국여자축구연맹 시상식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소연이 바란 리그의 양적, 질적 성장이 가능할까. 국제축구연맹(FIFA)은 여자 리그 성장이 '상업화 전략' 유무에 달려 있다고 본다.

여성 스포츠에 담긴 가치를 소개하고 시장을 설득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업체 딜로이트가 여자축구 '최전선'인 유럽 클럽을 조사해 지난 26일(한국시간) 발표한 보고서에는 그 성공 사례가 담겨 있다. 딜로이트는 유럽 여자축구 5개 리그(잉글랜드·독일·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 15개 팀의 수입 현황을 공개했다.

이들 구단의 2022-2023시즌 평균 수입은 430만유로(약 62억3천만원)다.

직전 시즌(260만유로) 대비 매출이 61%나 올랐다. 수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분석됐다.

스폰서·파트너십 등 상업 수입(58%), 홈 경기 수입(22%), 중계 수입(20%)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자팀이 유럽 팀 중 최고 수입(1천340만 유로)을 올렸다.

전 시즌 대비 수입 증가 폭도 74%로 가장 컸다.

2022-2023시즌에 네 시즌 연속 리그 우승을 이루고, 유럽축구연맹(UEFA) 여자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통산 두 번째 정상에 오른 덕에 브랜드 가치가 뛰었다.
'체급'이 커진 여자팀 중에는 유력 기업을 자체 스폰서로 확보한 곳도 나왔다.

바르셀로나는 이탈리아 화장품 브랜드 릴라스틸의 후원을 받는다.

잉글랜드 여자슈퍼리그(WSL)의 아스널은 스텔라 매카트니(패션), 첼시는 린달스(유제품)를 후원사로 잡았다.

맨체스터 시티는 잉글랜드는 최초로 글로벌 유아용품 업체 조이와 홈 구장의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기업 입장에서 남자팀보다 비용이 적게 들고, '축구에 관심 있는 여성'이라는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하는 장점이 있다는 게 딜로이트의 분석이다.

딜로이트는 올해 여성 스포츠가 전 세계적으로 11억 유로(약 1조 6천억원)가 넘는 수입을 창출할 것이라 내다본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이 여자축구다.

전 세계적으로 프로화된 리그, 클럽이 생기면서 5억 유로 이상 수입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WK리그가 이런 '상업화' 흐름에 편승할 수 있을까.

지난해 8월 공개한 보고서에서 FIFA는 WK리그를 상업화 전략이 부재한 곳으로 분류했다.

34개 리그 중 이런 전략이 없는 데다 TV 중계 수익을 내지 못하는 곳은 WK리그를 포함해 칠레, 탄자니아 등 6곳이다.

한국은 모로코·나이지리아·탄자니아와 함께 개별 팀당 후원 기업이 1개가 채 되지 않은 4곳에도 들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각 구단이 보유한 후원사는 평균 8개다.

여행·교육·헬스케어·금융·유통 등 분야는 다양하다.

TV 중계나 시청자 확보가 어려운 우리나라 여자축구는 홈 경기 수입도 사실상 없다.

첼시에서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린 지소연이 2022시즌 수원FC 유니폼을 입었지만, WK리그와 팀에 대한 주목도는 여전히 떨어졌다는 게 현장의 분석이다.
수원FC는 지소연의 영입과 함께 리그 최초로 유료 관중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평균 유료 관중은 2022년 102명, 2023년 218명가량에 그쳤다.

구단 측은 "지소연이 왔다지만 외부에서 먼저 여자팀 단독 스폰서나 파트너십 계약을 문의한 적이 없다"며 여자축구가 기업에 매력적으로 인식되지 않는 현실을 전했다.

11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한 데다 아시아 무대에서도 강팀으로 인식돼 리그에서 가장 브랜드 가치가 높은 인천 현대제철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제철은 2022년 스포츠 브랜드 엄브로와 파트너십을 맺었지만, 이외 이렇다 할 후원사는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수원FC의 최순호 단장은 "지소연 같은 스타가 팀마다 한두 명씩 있으면 모를까, WK리그 현실을 보면 상업화 논의를 시작할 수준도 되지 않는다"며 "경기장, 훈련장, 유소년 시스템 등 하드웨어와 지원스태프, 훈련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가 모두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WK리그는 상업화 단계, 경기력 모두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한 WSL보다 1년 이른 2009년 출범했다.

대부분 선수가 '투잡'이 필수였던 여타 리그와 달리, 실업팀의 일원으로서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이 장점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좁은 저변 등 각종 구조적 어려움에 더해 세계적 상업화 흐름에서 줄곧 탈선 중인 상황이 겹쳐 리그 간 격차가 계속 벌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FIFA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유소녀 축구 등록 인원은 1천600여명이다. 잉글랜드의 경우 등록 유소녀가 15만9천명이 넘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