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 위한 합병' 부정되자…시세조종·배임도 도미노처럼 무죄

검찰 공소사실 전제 무너지면서 이재용 세부 혐의 줄줄이 무죄
"사업상 목적 있는 이상 지배력 강화하려 했더라도 부당하지 않아"
"'프로젝트G'는 합리적 사업 검토안"…바이오젠 콜옵션 은폐도 인정 안해
법원이 3년 넘는 재판 끝에 삼성그룹이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부당하게 합병을 추진한 사실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런 판단은 검찰 기소의 전제 자체를 무너뜨림으로써 도미노처럼 이 회장에 적용된 모든 혐의가 무죄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는 5일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오로지 경영권 승계작업이라는 유일한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검찰 공소사실의 핵심 전제였다. 이 회장이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해 경영권 승계를 완성하려는 목적으로 미래전략실 차원에서 하달한 계획에 따라 양사의 합병이 이뤄졌으며, 이를 성사하기 위해 각종 불법행위가 이뤄졌다는 것이 검찰이 그린 사건의 구도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두 회사의 합병은 시장이 오래전부터 예상하고 전망했던 일이었고, 삼성 미래전략실이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검토한 여러 방안 중 하나였다며 이런 구도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검찰이 이 회장의 '약탈적' 승계계획안이라고 지목한 '프로젝트 G' 문건 역시 계열사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합리적인 사업 조정 방안을 검토한 내용일 뿐, 이 과정에서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을 희생시키려 할 의도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봤다. 두 회사의 합병이 악화한 경영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였고, 그룹 지배력 강화가 삼성물산과 주주들에게 이익이 되는 측면이 있었다는 점도 이 회장의 승계만을 목적으로 적법절차 없이 추진됐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로 꼽았다.

재판부는 "합병에 합리적인 사업상 목적이 존재하는 이상, 지배력 강화의 목적이 수반됐다고 하더라도 합병의 목적이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2015년 상반기에 제일모직의 주가가 높게 형성되고 삼성물산 주가는 하락하자 합병을 추진할 적절한 시점이라 판단해 승계계획을 실행에 옮겼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이처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부당 승계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결론 내림에 따라, 이 회장의 구체적 범죄사실이던 허위정보 유포, 악재성 정보 은폐,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가 줄줄이 무죄로 판단됐다.

먼저 2015년 5월 이사회 직후 합병을 공표하면서 공시자료 등을 통해 허위 정보를 유포한 혐의에 대해서는 공표 내용이 허위라고 볼 증거가 부족하고, 투자자 오해를 유발할 요소도 없었다고 봤다.

또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주총회를 앞두고 투자자와 의결권 자문사 등에 허위정보를 유포한 혐의에 대해서도 각종 공시와 IR 자료를 토대로 사실대로 합병 목적과 비율이 공표됐다고 판단했다.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모두 상장돼 각종 재무제표가 상시 공개됐고, 합병에 반대하던 엘리엇의 반대 논리까지 시장에 가감 없이 노출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를 억제하기 위해 삼성물산의 주가 부양을 유도할 목적으로 제일모직의 자사주를 집중적으로 매입해 시세를 조종했다는 혐의 역시 주가 관리 차원일 뿐 인위적인 주가 조작을 의도한 시세조종이라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을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제일모직의 지분가치·주가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다국적 제약사 바이오젠이 에피스 지분에 대해 콜옵션 권리를 가진 사실을 일부러 은폐했다는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바이오젠의 콜옵션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합병 찬성·반대를 판단하는 데 영향을 줬다고 보기 어렵고, 투자자를 기망할 의도로 은폐한 점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관련 혐의에 대한 무죄 판단으로도 이어졌다.

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젠의 콜옵션 보유 사실을 은폐하며 계속해서 절반 이상의 지분을 보유할 것처럼 거짓으로 공시하고, 로직스 재무제표에 콜옵션을 부채로 반영할 경우 자본잠식이 될 것을 우려해 2015년 회계처리 방식을 갑자기 바꿨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였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은 당시 바이오시밀러 업계의 불확실성을 회피하기 위함일 뿐 실질적 권리가 아니기 때문에 지배력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며 분식회계의 고의가 없었다고 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