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 충격받은 북한…대일관계 개선으로 맞불 놓나

기시다 총리 정상회담 추진에 김여정 담화로 호응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북일정상회담 추진 발언을 긍정 평가하는 담화를 내놓으면서 북한의 의도에 관심이 쏠린다. 15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여정 부부장은 이날 발표한 담화에서 일본인 납치나 핵·미사일 개발을 문제 삼지 않으면 북일관계 개선 및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취지 입장을 밝혔다.

기시다 총리가 지난 9일 중의원(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북일정상회담 추진 관련 질문에 "구체적으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힌 것에 대한 북한 고위급 인사의 첫 반응이었다.

사실 김 부부장의 이번 담화의 핵심 내용 자체는 대일 교섭에 있어 북한이 그동안 거듭 밝혀온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지난해 5월 기시다 총리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 조기 실현을 위한 고위급 협의를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을 때도, 박상길 외무성 부상이 북한은 '전제조건 없는 회담'을 희망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이번 담화는 우선 시점상 앞선 북한의 입장 표명과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과 쿠바의 외교관계 수립 발표가 난 지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나온 것이어서 양국 수교에 북한이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관측이다. 반세기 넘는 '형제국'이었던 쿠바의 노선 변경에 충격을 받은 북한이 일본과 관계 개선 모색 논의·동향으로 대응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쿠바와 수교가 우리에게 과제였던 것처럼 북한으로서는 일본이 과제"라며 "시점상 한-쿠바 수교로 뼈아픈 북한이 외교 다각화와 한국 흔들기 의도로 이런 메시지를 내놓았을 수 있다"고 봤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도 "한국과 적대관계를 강화하면서도 일본과는 협력관계로 전환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한-쿠바 수교에 대해 북일 협력관계로 맞불을 놓겠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담화자의 '급'에서도 앞선 입장 표명과 다른 북한의 노림수가 읽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나서지 않은 것은 물론 외무성 고위 당국자 명의도 아닌 '개인적 입장'임을 전제로 하는 담화 형식을 채택함으로써 일본이 호응하지 않을 경우의 정치적 부담도 덜면서, 동시에 김 위원장 최측근인 '백두혈통'이 나서는 방식으로 내용에 무게감을 실었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이 이런 메시지를 통해 '일본 떠보기'에 나섰지만, 실제 북일 접촉이 순조롭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북일정상회담을 통해 지지율 상승의 계기를 찾으려는 기시다 총리로서는 대북 접촉에 있어 국내적으로 최대 현안인 납북자 문제를 배제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관측이다.

피해자 12명이 여전히 북한에 남아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맞서, 북한은 아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양측은 오랜 시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양측이 정치적 필요에 의해 해법을 찾는다면 실무접촉의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홍민 위원은 "일본(정권)으로서는 북한과 납북자 문제를 논의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면서도 "납북자 문제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풀기 위해 북한과 먼저 광범위한 대화를 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북일접촉 자체를 이슈화해나갈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