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지키려 비례 의석 줄인 거대양당…기형 선거구도 등장

행정구역과 지역구 명칭 다른 곳도…선거일 코 앞 '늑장 획정' 또 재연
양당 텃밭 의석 사수에 군소정당들 "나눠먹기 야합" "적대적 공생" 비판
여야가 4·10 총선일을 불과 41일 앞둔 29일 비례대표 1석을 줄이면서 합의한 선거구획정안을 놓고 거대 양당의 기득권 지키기를 위한 결과물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선거일 1년 전에 확정해야 하는 공직선거법을 준수하는 것도 모자라 막판까지 유불리 계산에 몰두하다 선거일에 쫓긴 나머지 부랴부랴 합의하며 유권자 권리를 침해하는 모습은 20대 총선(42일 전), 21대 총선(39일 전)에 이어 어김없이 반복됐다.

서울 면적의 8배, 4배에 달하는 거대한 '공룡 선거구'는 피했지만, 지역구 명칭에 포함되지 않은 인근의 다른 행정구역 거주자가 해당 지역구에 투표해야 하는 '기형 선거구'가 등장했다.

◇ '비례성 강화' 여론 깡그리 무시…의도는 '텃밭' 의석수 지키기
여야의 이날 합의 내용 중에는 비례대표 의석을 1석 줄인 것에 비판이 집중되고 있다. 비례대표 선출 방식에 준연동형 제도를 적용하고 있는 현행 공직선거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모순적' 행태여서다.

거대 양당은 이미 이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는 위성정당을 창당하는 '꼼수'를 부려왔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지난 총선을 앞두고 준연동형 비례제를 주도해서 통과시킨 데다 평소 비례 의원정수 확대를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비례대표 의석을 줄인 것에 양당이 각자의 '텃밭'에서 의석수를 유지하기 위한 의도가 깔렸다는 점도 문제다.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획정위)가 제출한 원안은 서울과 전북에서 1석씩 줄이고, 인천과 경기에서 각 1석 늘리도록 했다.

민주당은 자당의 텃밭인 전북의 의석수 감소에 반발하며 대신 국민의힘 강세 지역인 부산 의석수를 줄이자고 요구했고, 여당은 이를 받을 수 없다고 맞섰다. 결국 양당은 전북과 부산의 의석수를 건드리지 않는 '묘수'를 비례 의석 감축에서 찾았다.

이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은 19대 총선 당시 54석에서 20·21대 총선 47석으로 줄었다가 이번에 한석이 더 줄었다.

인구 감소 추세에 맞춰 지역구마다 1명만 뽑는 소선거구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비례성과 정치적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여론을 정치권이 무시하며 '밥그릇 지키기'에만 몰두한 셈이다.
◇ 군산 시민이 김제·부안 지역구에 투표?
여야가 이번 합의에서 4년 전처럼 별도의 특례구역을 지정한 것을 두고도 비판이 제기된다.

획정위 원안에 담겼던 6개 시군을 아우르는 강원 속초·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등의 '공룡 선거구' 등장은 막았지만, 기존 지역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인구수를 맞추기 위해 특례구역을 지정한 탓에 기형적인 선거구가 일부 나타났다.

경기도 양주시에서 남면과 은현면을 떼 인근의 동두천·연천 선거구에 포함하고, 전북 군산 대야면·회현면을 김제·부안 선거구로 묶었다.

양주에 사는 유권자가 동두천·연천 후보에게 투표하고, 일부 군산 시민은 김제·부안 출마자에게 표를 주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는 시·도 관할구역 안에서 인구·행정구역·지리적 여건·교통·생활문화권 등을 고려해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는 현행 공직선거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지난 총선 때만 한시 적용하기로 했던 강원 춘천, 전남 순천 분할과 관련한 특례조항도 되살아났다.

특례구역은 아니지만, 부산 북·강서갑과 북·강서을 지역구가 부산 북갑과 북을, 강서 등 3개로 나뉘는 과정에서 산을 마주하고 있어 도보나 차량 직접 이동이 불가능한 지역(만덕 1동·화명 1동)이 같은 선거구(북을)로 묶이기도 했다.
◇ 군소야당·전문가들 "나눠먹기 야합" "적대적 공생" 비판
비례제를 통한 의석 확보가 절실한 군소정당들은 이날 앞다퉈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녹색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이날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양당의 비례 의석 축소 담합을 강력 규탄한다"며 "비례 의석을 곶감 빼먹듯 줄여도 되냐. 민의보다 밥그릇이 먼저인 양당에 진저리가 난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김민정 대변인도 "거대 양당의 제 밥그릇 지키기 야합"이라며 "위성정당에 이어 비례제 취지를 무너뜨리는 제2의 야합 정치, 꼼수 정치"라고 논평했다.

개혁신당 주이삭 상근부대변인 역시 논평을 통해 "나눠먹기식 합의로, 거대양당에 유리한 결과로 조율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국민 눈치 보지 않는 야합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로운미래 박원석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선거구 나눠 먹기 담합이자, 다양성과 비례성을 보장하는 비례제 취지 왜곡"이라며 "죽일 듯 싸우다가도 기득권 앞에선 뒤로 손잡는 행태야말로 적대적 공생의 민낯"이라고 쏘아붙였다.

전문가들은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을 또 어긴 점, 원칙 없는 비례 의석 축소 문제를 지적했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획정안을 또다시 선거 코 앞에서 확정하며 유권자의 이익을 희생시켰다"며 "정당이 이익집단의 성격이 더 강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결과"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어 "정치권은 비례대표를 필요할 때는 마음대로 줄이고 늘리는 여분용으로 보는 것 같다"며 "비례대표 무용론을 정치권이 자인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인천대 이준한 교수는 "비례성과 대표성을 늘린다고 준연동형제를 도입한 정치권이 비례를 줄인다는 것은 논리적 일관성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