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가도 대기업만큼 보수 받던 울산 '킹산직' 시대는 저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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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음알음 취업하고, 고용세습 이뤄졌으나 다 옛말…비정규직만 늘어
"산업수도서 생산기지로 추락 중"…새 책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남자는) 공부 못하면 공장가면 되지"라는 말은 울산에서 익숙한 표현이다.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공장이 울산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서 일거리가 널렸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중추로서, 울산은 제조업 전초기지 역할을 해왔다.
일자리와 돈이 몰리니 전국의 생산직 노동자들이 찾아들었다. 울산의 제조업 노동자 숫자는 1962년 742명에서 1980년 6만6천529명으로 18년 동안 90배 증가했다.
2019년에는 17만명에 이르면서 40년 동안 또 3배 늘었다.
노동집적도가 올라가고, 기술개발이 이어지면서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까지 도약했다. 그렇게 산업 수도가 된 울산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전국 1위로 올라섰다.
울산의 월평균 임금은 2020년 기준 343만원으로, 서울(374만5천761원)에 이어 전국 2위다.
이 같은 풍요 속에 한때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았고, 서울 강남 백화점의 식품관에도 없는 진귀한 과일, 식자재가 울산 백화점 식품관에 즐비하기도 했다. 널린 일자리와 높은 임금. 울산에 거주하는 남성들이 취업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던 이유였다.
울산 일부 공장에서 근무하는 생산직은 높은 급여 수준과 정년 보장, 각종 복지 혜택 등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킹산직'(생산직의 왕)이라 불렸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 속에 이런 낙관주의가 흔들리고 있다고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적한다.
새롭게 발간된 책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를 통해서다.
나아가 2030년 무렵이면 우울한 도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로봇 등 기술 발전으로 고용이 잘 이뤄지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도시가 되리라는 것이다.
일단 고용이 어려워졌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울산에서 대기업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가 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직업훈련원을 나오면 별 탈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1980년대에는 중졸 이하의 학력으로도 대기업 입사가 가능했다.
'공부 못하면 공장 가면 되지'라는 믿음이 거저 생긴 건 아니었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취업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 구조조정 한파를 거치며 호시절은 끝났다.
2015년 전국 조선소 종사자는 20만명에 육박했지만, 2023년 기준으로는 간신히 10만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희망퇴직이 잇따르고, 정규직 채용은 가뭄에 콩 나듯이 이뤄지며 인건비가 저렴한 외국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채용 비율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로봇들이 공장에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부품 협력사들의 일감도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지역 대학은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울산 3대 산업을 뒷받침할 인재 공급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기술 혁신의 주역인 엔지니어링 센터는 인재를 찾아 수도권으로 이전한 지 오래됐다.
이제 '알음알음' 아는 사람의 전화 한 통이면 취업하던 시대, '고용세습'이 도마 위에 올랐던 시대는 완전히 끝나버렸다. 청년들은 이제 비정규직 일자리를 놓고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경쟁해야 하고, 로봇들의 침공 속에 그마저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인구통계학적으로 도시는 고령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저자는 "지금까지 울산의 자신감 중 하나는 울산 없이 한국 제조업이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그 자신감의 기반이 허물어지고 있다.
울산은 산업도시에서 생산기지로 추락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
이어 "추세대로라면 2030년쯤 울산의 인구가 100만명을 밑돌고, 대기업 작업장에 정규직 생산직이 사라지는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계기가 현재로선 없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아직 희망을 버리긴 이르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제조업 역량이 건재하다는 점, 로봇과 자동화 가공 선반에 대체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노하우가 있다는 점, 울산대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이 여전히 많은 공학도를 배출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그 희망의 증표다.
다만 '묵묵히 일하면 가정을 꾸리고 중산층의 괜찮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노동자의 꿈도 기업,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각자도생 전략 속에 점점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도 저자는 함께 지적한다.
"산업도시 울산은 노동자 중산층의 도시로 기적을 이루었고, 한국의 산업 수도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젠 예전처럼 정규직을 뽑을 계획이 없는 회사를 바라보며 울산의 생산직 노동자는 정년을 '몇 년' 더 연장하는 것을 들고나왔다.
연대의 부족 속에서 각자도생의 전략이 만들어 낸 풍경이다. "
부키. 432쪽.
/연합뉴스
"산업수도서 생산기지로 추락 중"…새 책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남자는) 공부 못하면 공장가면 되지"라는 말은 울산에서 익숙한 표현이다.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공장이 울산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서 일거리가 널렸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중추로서, 울산은 제조업 전초기지 역할을 해왔다.
일자리와 돈이 몰리니 전국의 생산직 노동자들이 찾아들었다. 울산의 제조업 노동자 숫자는 1962년 742명에서 1980년 6만6천529명으로 18년 동안 90배 증가했다.
2019년에는 17만명에 이르면서 40년 동안 또 3배 늘었다.
노동집적도가 올라가고, 기술개발이 이어지면서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까지 도약했다. 그렇게 산업 수도가 된 울산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전국 1위로 올라섰다.
울산의 월평균 임금은 2020년 기준 343만원으로, 서울(374만5천761원)에 이어 전국 2위다.
이 같은 풍요 속에 한때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았고, 서울 강남 백화점의 식품관에도 없는 진귀한 과일, 식자재가 울산 백화점 식품관에 즐비하기도 했다. 널린 일자리와 높은 임금. 울산에 거주하는 남성들이 취업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던 이유였다.
울산 일부 공장에서 근무하는 생산직은 높은 급여 수준과 정년 보장, 각종 복지 혜택 등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킹산직'(생산직의 왕)이라 불렸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 속에 이런 낙관주의가 흔들리고 있다고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적한다.
새롭게 발간된 책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를 통해서다.
나아가 2030년 무렵이면 우울한 도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로봇 등 기술 발전으로 고용이 잘 이뤄지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도시가 되리라는 것이다.
일단 고용이 어려워졌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울산에서 대기업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가 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직업훈련원을 나오면 별 탈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1980년대에는 중졸 이하의 학력으로도 대기업 입사가 가능했다.
'공부 못하면 공장 가면 되지'라는 믿음이 거저 생긴 건 아니었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취업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 구조조정 한파를 거치며 호시절은 끝났다.
2015년 전국 조선소 종사자는 20만명에 육박했지만, 2023년 기준으로는 간신히 10만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희망퇴직이 잇따르고, 정규직 채용은 가뭄에 콩 나듯이 이뤄지며 인건비가 저렴한 외국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채용 비율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로봇들이 공장에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부품 협력사들의 일감도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지역 대학은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울산 3대 산업을 뒷받침할 인재 공급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기술 혁신의 주역인 엔지니어링 센터는 인재를 찾아 수도권으로 이전한 지 오래됐다.
이제 '알음알음' 아는 사람의 전화 한 통이면 취업하던 시대, '고용세습'이 도마 위에 올랐던 시대는 완전히 끝나버렸다. 청년들은 이제 비정규직 일자리를 놓고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경쟁해야 하고, 로봇들의 침공 속에 그마저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인구통계학적으로 도시는 고령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저자는 "지금까지 울산의 자신감 중 하나는 울산 없이 한국 제조업이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그 자신감의 기반이 허물어지고 있다.
울산은 산업도시에서 생산기지로 추락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
이어 "추세대로라면 2030년쯤 울산의 인구가 100만명을 밑돌고, 대기업 작업장에 정규직 생산직이 사라지는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계기가 현재로선 없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아직 희망을 버리긴 이르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제조업 역량이 건재하다는 점, 로봇과 자동화 가공 선반에 대체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노하우가 있다는 점, 울산대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이 여전히 많은 공학도를 배출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그 희망의 증표다.
다만 '묵묵히 일하면 가정을 꾸리고 중산층의 괜찮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노동자의 꿈도 기업,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각자도생 전략 속에 점점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도 저자는 함께 지적한다.
"산업도시 울산은 노동자 중산층의 도시로 기적을 이루었고, 한국의 산업 수도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젠 예전처럼 정규직을 뽑을 계획이 없는 회사를 바라보며 울산의 생산직 노동자는 정년을 '몇 년' 더 연장하는 것을 들고나왔다.
연대의 부족 속에서 각자도생의 전략이 만들어 낸 풍경이다. "
부키. 432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