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주택 계약업무 손떼기 전 설계공모 50여건 쏟아낸 LH

이달 1일부로 조달청에 업무이관…직전 보름간 설계 발주 '집중'
LH "공모 앞당겨야 공공주택 공급 속도…업무이관 초기 혼선방지"
공공주택 질 하락 우려도…"철저한 사후관리 필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철근 누락 사태' 여파로 조달청에 설계·시공·감리 선정 권한을 넘기기 직전 보름간 50여건의 공동주택 설계공모를 쏟아낸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한 해 공고한 공동주택 설계공모보다 많은 물량이 한꺼번에 나온 것이다.

22일 LH 홈페이지 공고를 보면 LH는 지난달 15일부터 29일까지 총 51개 공공주택 블록의 설계용역을 공모했다.

총 발주 금액은 1천186억원 규모다. 이는 LH가 올해 예고한 공동주택 설계공모 발주 금액(2천800억원)의 42%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3기 신도시인 하남교산에서만 9개 공공주택 블록의 설계공모가 나왔다.

나눔형 공공분양주택 1천459가구가 들어서는 하남교산 A-14 블록은 설계용역비가 55억원으로 가장 높다. 3기 신도시 광명시흥 A2·A3 블록은 합쳐서 63억5천만원의 설계용역비가 책정됐다.

A2 블록에는 나눔형 공공분양주택 689가구, A3 블록에는 950가구가 들어선다.

지난해 7월 터진 '철근 누락' 사태 이후 LH가 전관 업체에 특혜를 준다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LH 설계·감리 용역 발주는 오랜 기간 중단됐다. 전관 업체 배제 기준 등을 마련한 뒤 업체 선정을 재개하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LH 공동주택 설계 발주 물량은 예년과 비교해 대폭 줄었고, 공공주택 공급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랐다.
작년 한 해 동안 LH는 부천대장, 남양주왕숙2, 수원당수2 등에서 31건의 공동주택 설계공모를 했다.

지난해 묶여 있던 설계공모가 올해로 넘어왔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지난달 LH가 공고한 설계공모는 작년 한 해 물량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는 이달 1일부로 LH의 설계·발주·감리업체 선정 권한이 조달청으로 이관된 것과 무관치 않다.

업무 이관은 LH 퇴직자가 취업한 전관업체의 이권 개입 소지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LH가 필요한 설계·시공·감리 발주자료를 작성해 넘기면 조달청이 용역 공고, 업체 평가 및 선정, 계약 체결을 진행한다.

LH가 힘을 쓰기 어려운 구조다.

LH는 업무 이관 초기 혼선을 방지하고, 공공주택 공급을 확대한다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대한 앞당겨 설계공모를 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가뭄에 단비'라며 환영하는 한편, 공공주택의 질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A 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불황으로 그간 일감이 너무 없었는데, 대응하기 벅찰 정도의 설계공모 물량이 나왔다"며 "이전에는 수주 능력을 갖춘 기존 LH 설계 강자들이 용역을 따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한꺼번에 나온 물량을 기존 강자들이 다 가져갈 수는 없으니 기회가 분산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 회사가 1년에 3건까지만 당선될 수 있도록 한 LH의 '설계공모 수주 쿼터제'가 폐지되면서 건축사사무소들은 동시에 여러 건의 설계공모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설계용역이 한꺼번에 몰린 만큼 LH가 사후 관리를 더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B 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설계가 한꺼번에 몰리면 시공 물량도 한꺼번에 쏟아지고, 시공사들이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며 "LH가 사업 스케줄을 잘 분배하고, 현장 관리 인력도 꼼꼼하게 배치해야 제2의 철근 누락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H 관계자는 "공모를 앞당겨야 그만큼 공공주택 공급에 속도가 붙는다"며 "심사를 꼼꼼히 해서 공공주택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업체 선정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