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법인으로 602개 계좌 개설…대법 "은행 적절 심사했나 봐야"

'징역 2년' 원심 파기…"증빙자료 확인없었다면 업무방해죄 아냐"
유령 법인으로 계좌를 개설해 금융기관에 대한 업무방해죄로 기소됐을 때 금융기관이 제대로 심사를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재차 나왔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지난달 28일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지난 2019년 유령법인의 대표자로 명의대여자인 B씨를 선임하는 법인 변경 등기를 마친 뒤 은행 지점에서 법인명의의 계좌를 개설했다.

A씨는 법인 계좌가 개설되면 이에 연계된 통장, 체크카드를 도박사이트나 보이스피싱 조직에 유통할 목적으로 유령법인을 정상적인 회사인 것처럼 사업자등록증과 인감증명서 등 서류를 은행에 제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이런 방식으로 2019년 11월부터 2022년 5월까지 금융기관들로부터 35개 유령법인 명의의 계좌 602개를 개설해 금융기관들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2심은 이러한 A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모두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은 피해 금융기관의 업무담당자가 피고인에게 금융거래 목적의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등 적절한 심사절차를 진행했음에도 피고인의 문서 위조 등으로 업무담당자가 허위임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심리하지 않았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금융기관의 업무 담당자가 제출된 자료를 가볍게 믿고 수용했다면 신청인이 금융기관을 속여서 업무를 방해했다기보다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가 문제가 된다는 취지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8월에도 금융기관 업무담당자가 계좌개설 신청인의 허위 답변만을 그대로 믿고 증빙자료 확인 없이 법인 명의 계좌를 개설해준 경우에는 신청인의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