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비대위원장 "증원 결정과정 밝혔다면 반발 없었을 것"

강희경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근거 있다면 정부안 수용 못 할 이유 없어"
'의료사고 형사처벌·낮은 수가' 개선 촉구…"전공의 처벌 문제 해결해달라"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2천명 늘리기로 결정한 과정을 의료계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알렸다면, 사실 의사들이 이렇게까지 반발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
이달 4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3기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한 강희경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7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결정 과정이 불투명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우리나라에 어떤 의료시스템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의대 입학정원을 얼마나 늘려야 하는지를 확실한 근거를 들어 발표한다면 의료계가 정부안을 수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의대 교수협 비대위는 '2천명 의대 증원'을 수용할 수 없다면, 의료계가 생각하는 대안을 제시하라는 정부의 요청에 따라 '필요 의사 수 추계 연구'를 공개모집 중이다. 또 국민이 원하는 의료시스템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오는 10일까지 국민을 대상으로 '국민·환자들이 원하는 개선된 우리나라 의료서비스의 모습'에 대한 원고도 받고 있다.

강 교수는 "올바른 의료 정책을 제시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 이달 4일에 3기 비대위가 출범했다"며 "온갖 자료를 모아서 우리나라 의료 상황을 진단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을 제시하는 것은 교수들이 잘하는 일이다.

교수들이 해야 했던 일인데 깨닫지 못한 일이기도 하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비대위원장을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의료계 현안 중 가장 시급한 문제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진 형사처벌'과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가'를 들었다.

'수가'는 건강보험에서 의료기관 등에 의료서비스의 대가로 지불하는 돈이다. 그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로서 체감하는 가장 큰 문제는 전공의들이 소아청소년과를 더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이대목동병원 사건 이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바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2017년에 이대목동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갓난아기 4명이 패혈증으로 사망하자 의료진이 구속됐다가 무죄 선고를 받았었다.

강 교수는 "당시 담당 교수가 수갑을 차는 일이 벌어졌다"며 "소아과뿐만 아니라 응급의학과와 흉부외과 등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과에서는 의사가 해야 할 일을 다해도 위험이 따를 수 있다.

고의가 아니고 의무를 다했음에도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걱정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가 소아청소년과 수가를 올리겠다고 하지만, 예를 들어 원가의 30% 수준밖에 안 되는 수가를 100% 올려준다고 해도 원가의 60%밖에 안 되는 것"이라며 "수가를 정상화했다고 이야기하려면 적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으로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소아청소년과 유지를 위해 최대 7천원의 '전문의 정책가산'과 중증소아 응급진료 시 1세 미만은 100%, 8세 미만은 50% 등 '연령가산'을 신설하는 등 수가 개선에 나섰지만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강 교수는 "비대위의 요구사항은 의대 증원 정책 원점 재검토"라며 "무엇이 문제인지 합리적으로 진단하고, 적절한 처방을 통해 우리 의료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사 수 추계 연구 공모를 통해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마련되면 그중 무엇을 선택할지를 다시 논의해볼 것"이라며 "(정부도) 함께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정부의 업무복귀 명령을 어겨 처벌 위험에 있는 전공의들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그는 "제자들이 처벌 위험에 처해 있다"며 "정부가 처벌하겠다고 하니 병원에 돌아오고 싶어도 걱정돼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강 교수는 8월 말까지만 진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이에 대해 "희망 사직 일을 그날로 밝힌 것은 맞지만, 그때까지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며 "제발 해결해달라"고 정부에 재차 호소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