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헝가리, 中-EU관계 역할" 오르반 "中,다극화 질서 기둥"(종합)

정상회담서 밀착…오르반, 中 겨냥한 美·EU의 '과잉생산·디리스킹' 공세에 "동의 안해"
양 정상 "외교관계 최고수준으로 격상"…원자력·철도·전기차 등 18개 분야서 협정 체결
유럽을 순방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와 우호 관계를 과시하며 양국 간 협력 수준을 한층 더 격상하기로 했다. AFP·신화 통신 등에 따르면 시 주석과 오르반 총리는 9일(현지시간)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양국은 전천후 포괄적(전면적) 전략 동반자 관계가 되어 협력 수준을 더 높게 발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양국은 에너지와 인프라 등 18개 분야에서 협정을 체결하고 긴밀하게 협력사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두 정상은 공언했다.

사업 내용은 이날 구체적으로 거론되지 않았지만, 철도와 도로 인프라 건설, 원자력 에너지, 자동차 산업 등 분야에서 기존의 양국 협력 사업을 촉진하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제뿐 아니라 안보·외교 사안을 두고도 두 정상은 공감대를 드러냈다.

오르반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방안과 관련해 "즉각적인 휴전과 평화 회담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을 지지하며, 따라서 시 주석이 제시한 중국의 평화 계획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작년 2월 우크라이나 평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각국 주권과 독립, 영토 완전성 보장, 유엔헌장 취지 준수, 냉전사고 버리기, 각국의 합리적 안보 우려 존중 등 12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휴전을 촉구하되 러시아군의 점령지 철수를 요구하지는 않는 취지여서 서방국들이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삼는 내용들과는 거리가 있다.

오르반 총리는 "중국은 새로운 다극화된 세계 질서에서 기둥 같은 국가"라고 추켜세우며 이른바 중국의 '과잉생산'과 대(對)중국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미국과 다른 EU 회원국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시 주석은 "헝가리는 올 하반기 유럽연합(EU) 순회 의장국이라며 중국과 EU와의 관계 증진에 있어서 EU 내에서 더 큰 역할을 할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양국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외교관계를 격상하고 고위급 교류 강화를 포함해 분야별 협력 방향을 담은 총 21개 항으로 구성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중국 입장에서 '전천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는 파키스탄, 벨로루시, 베네수엘라 등 극소수 국가들과만 맺은 최고 수준의 외교관계로 헝가리가 중국이 신뢰하는 국가 중 하나가 됐음을 의미한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했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에 앞서 헝가리 매체 '마자르 넴제트'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우리(중국·헝가리)의 양자 관계는 황금 항해를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지난 6일 5년여만의 유럽 순방에 나선 시 주석은 프랑스와 세르비아를 찾은 뒤 전날 마지막 방문국 헝가리에 들어왔다.

헝가리 공군은 시 주석을 태운 항공기가 영공 안으로 들어오자 전투기로 호위했다.

오르반 총리가 공항에서 직접 시 주석을 맞이했고, 수요크 터마시 대통령이 부다페스트 대통령궁에 마련한 환영 만찬으로 시 주석을 환대했다.

EU 회원국임에도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헝가리는 중국과 여러 방면에서 밀접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오르반 총리는 EU 지도자 가운데 처음으로 중국과 일대일로 계약을 체결했다.

EU 회원국 중 중국과 가장 가까운 국가로 평가되는 헝가리는 EU의 대중 디리스킹에 반대하고 중국 인권을 겨냥한 성명도 차단해 왔다.

헝가리는 중동부 유럽에서 중국 투자의 최대 수혜국으로 지난 2022년에는 일대일로 자금을 가장 많이 투자받은 국가이기도 하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 수년간 헝가리 투자 프로젝트에 160억달러(약 21조9천억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중국 배터리업체인 CATL은 헝가리에 78억달러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고, 전기차 업체 BYD도 헝가리 남부 도시 세게드에 공장을 건립 중이다.

오르반 총리는 중국에 유럽 중부의 자동차 공급망 공간을 내어주는 동시에 부다페스트와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를 연결하는 철도 사업에 중국의 투자를 받았다.

BYD에 이어 중국 창청자동차(GWM)가 헝가리에 전기차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도 양국이 논의 중으로 알려졌다.

부다페스트 중심부와 공항을 연결하는 고속철도 사업에도 중국의 참여가 점쳐지고 있다. 시 주석은 마지막 순방지인 헝가리 방문을 끝으로 엿새간의 유럽 3개국 방문을 마치고 10일(현지시간)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