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식량자급률 다시 보기

자급률과 식량안보 연결 부적절
특정 작물 근거 '위기론' 재고해야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장
2022년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46%다. 우리 국민이 소비한 총식량 가운데 국내 생산 비중이 절반가량이고 나머지는 수입했다는 의미다. 축산에 사용하는 옥수수 등은 수입량이 훨씬 많기 때문에, 사료용 곡물까지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0%로 더 낮다. 이 통계는 한국이 얼마나 많은 식량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식량안보가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종종 인용된다. 그리고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함께 제시되곤 한다.

낮은 식량자급률이 사회의 심각한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경청해야 한다.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다양한 해법을 모색하는 노력 역시 타당하다. 단,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려면 무작정 생산을 늘리자거나 정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문제의 원인부터 차분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품목별로 식량자급률을 찬찬히 짚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주목해야 할 것은 쌀과 밀이다.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먹는 쌀은 2022년 기준 자급률이 105%다. 국내 수요 이상으로 쌀을 생산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밀은 자급률이 1.3%에 불과해서, 국민이 소비하는 밀은 대부분 수입한다. 그런데 생산만큼 중요한 것이 소비량이다. 1960년대 130㎏에 달한 1인당 연간 쌀소비량은 2023년 56㎏까지 낮아졌다. 반면 빵, 국수, 과자 등 밀로 만든 식료품 소비는 크게 늘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밀의 양이 12만t인데 2021년 밀 수입량은 444만t에 달했다. 양적으로는 국내 쌀 생산량 370만t(2023년)을 능가한다.

밀이 쌀에 버금가는 주곡으로 자리 잡은 상황을 고려할 때,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추진할 수 있는 전략은 두 가지다. 첫째는 국민이 모두 우리 밀을 먹을 수 있도록 밀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다. 둘째는 식생활을 지금보다 더 쌀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정부는 지난 수년간 이 두 가지 모두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리 밀 생산을 늘려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5%까지 높이고자 했지만, 여전히 1%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쌀국수처럼 쌀소비를 늘리는 방안도 다양하게 시도했지만, 소비자의 취향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실패를 인정하고 과감한 인식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일지 모른다. 밀이나 커피처럼 국민이 애용하지만 우리 풍토에서는 대량생산이 어려운 작물을 근거로 삼아 식량 위기를 논하는 방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국제 정세 변화와 기후 문제 때문에 밀이나 커피의 국제가격이 급등하면 해당 제품을 애용하는 국민이 많은 불편을 겪는다. 그러나 식량안보라는 개념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의미, 즉 절대적인 식량 부족으로 인해 국민 생명과 국가 존립이 위협받는 상황이 초래된다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식량자급률과 식량안보를 단순하게 연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식량안보를 강화하려면 식량자급률에 매몰되기보다 시야를 더 넓힐 필요가 있다. 2023년 국내 농업 부문에서 생산한 총부가가치는 38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7%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를 관장하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예산만 17조원이다. 38조원의 부가가치 생산을 지원하기 위해 17조원의 세금을 쓰는 것 같은 비효율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식량안보의 출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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