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중국을 겨냥해 강압과 협박, 근거 없는 주장으로 남중국해 안정을 해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31일(현지시간) 싱가포르에서 개막한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기조연설자로 나서 "필리핀과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남중국해 평화와 안정, 번영을 위한 비전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주체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불행하게도 그 비전은 지금의 현실과는 멀다"며 "불법적, 강압적, 기만적인 행동이 계속 우리 주권과 영토를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적으로 중국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남중국해에서 필리핀을 비롯한 주변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우리가 영해에 그리는 선은 상상이 아니라 국제법에 따른 것"이라며 "조금도 양보할 뜻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의 존재는 지역 평화에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지역의 지속적인 안정을 위해서는 중국과 미국이 경쟁 관계를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관리해야 한다"며 "양국 경쟁이 새로운 안보 딜레마를 조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U자 형태로 9개 선(구단선)을 긋고 이 안의 약 90%를 자국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필리핀은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에 소송을 제기해 2016년 중국 주장이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중국이 이를 무시하고 영유권을 고집하면서 주변국과 대립하고 있다. 특히 중국 해경선이 필리핀 선박에 물대포 공격을 가하는 등 양국 간 충돌이 이어져 왔다.
최근 중국이 남중국해에 일방적으로 연례 어업 금지 조치를 발령하고 이 해역에 진입하는 외국인을 구금하기로 하면서 긴장은 더욱 고조된 상태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대만,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 북한 도발 등과 함께 이번 회의 중심 화두로 꼽힌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이날 현지에서 열린 둥쥔 중국 국방부장과의 대면 회담에서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국도 자국 입장을 고수하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다.
추이톈카이 전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이날 특별 세션 회의에서 "남중국해 긴장이 완화되기를 바라지만 중국 주권이 침해되면 대가가 따를 것"이라며 "중국 해안경비대는 영해 내에서만 순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필리핀은 2022년 마르코스 대통령 취임 이후 남중국해에서 미군과 합동 순찰과 훈련을 실시하는 등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해왔다. 미국은 대만과 남중국해 주변 지역에서 군사력을 증강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동맹국으로 필리핀을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