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감독 김경문 마지막 기회…3김도 못한 한화 우승 한 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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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의 야구' 김경문, 한화 사령탑으로 6년 만에 프로야구 복귀
KS 준우승만 4차례…김인식·김응용·김성근도 실패한 '한화 우승'의 꿈 도전 2일 한화 이글스 신임 사령탑에 오른 김경문(65) 감독의 야구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신뢰와 뚝심'으로 표현할 수 있다. 김경문 감독은 선수 시절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선 굵은 지도자 철학으로 한국 프로야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포수 출신인 김 감독은 1982년 OB 베어스(현 두산)의 창단 멤버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뒤 짧은 선수 생활을 마치고 만 36세의 젊은 나이에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삼성 라이온즈 배터리 코치를 거친 김 감독은 1998년 친정팀 OB의 배터리 코치로 옮겼고, 2003년 11월부터 두산을 이끌었다. 김 감독은 외풍에 흔들리지 않기로 유명했다.
2006년 신고선수(현 육성선수)로 두산에 입단한 김현수(현 LG 트윈스)를 주변의 반대에도 주전으로 밀어붙인 일화는 유명하다.
타격 실력은 좋지만, 수비와 주루 능력이 낮다는 평가로 신인드래프트에서 프로 구단들의 외면을 받았던 김현수는 김 감독의 안목 덕에 한국 최고의 교타자로 성장했다. 손시헌(현 SSG 랜더스 2군 감독), 이종욱(현 NC 다이노스 코치), 고영민(현 롯데 자이언츠 코치) 등 성실한 모습을 보이는 원석을 가려내 팀의 주축으로 만든 이도 김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2004년부터 2010년까지 7시즌 중 6시즌에서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기도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김경문 감독을 세기의 명장으로 올려놓은 대회였다. 당시 한국은 아마야구 최강 쿠바, 일본 등을 따돌리며 9전 전승으로 사상 첫 금메달 신화를 썼다.
김 감독은 당시에도 대표팀을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부진에 시달리던 '4번 타자' 이승엽(현 두산 감독)을 끝까지 신뢰했고, 이승엽은 일본과 준결승 2-2로 맞선 8회말 극적인 투런 홈런을 터뜨리며 화답해 온 국민에게 전율을 선사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2011년 신생팀인 NC 다이노스 사령탑으로 취임한 뒤에도 자신의 색깔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투수로 뽑았던 간판스타 나성범(현 KIA 타이거즈)을 눈여겨보다가 타자 전향을 밀어붙여 성공했고, 수비가 약하다고 평가받았던 박민우를 주전 2루수로 낙점해 최고 스타로 만들었다.
NC는 1군에 합류한 2013년 9개 팀 중 7위로 선전했고, 이듬해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NC는 김 감독이 중도 사퇴한 2018년 전까지 매년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다. 화려한 지도자 생활을 했던 김경문 감독이지만, KBO리그 우승 반지를 끼지 못한 것은 절절한 한(恨)으로 남아있다.
김 감독은 두산을 이끌던 2005년과 2007년, 2008년 한국시리즈(KS)에서 준우승으로 아쉬움을 삼켰고, NC 창단 후 첫 KS 무대를 밟은 2016년에도 준우승에 머물렀다.
두산과 NC는 김 감독이 잘 다져놓은 토양을 딛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KS 우승의 과실을 따냈지만, 정작 김 감독은 우승의 현장을 함께하지 못했다.
김 감독은 종종 "KS 우승은 내 인생에서 마지막 남은 한"이라며 "KS에서 우승한 뒤 펑펑 눈물을 쏟는 것이 내 인생의 꿈"이라고 말해왔다.
공교롭게도 한화 역시 우승에 목말라 있다.
1999년 이후 24년 동안 우승하지 못한 한화는 그동안 내로라하는 명장을 모셔 왔지만 좀처럼 반등하지 못했다.
'국민 감독' 김인식 감독(2005~2009년), '우승 청부사' 김응용 감독(2013~2014년), '야신' 김성근 감독(2015~2017년)은 모두 한화에서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김인식, 김응용, 김성근 감독은 모두 한화 사령탑 이후로는 프로에 돌아오지 못했다.
김경문 감독은 본인과 한화 구단의 꿈을 향해 '3김(金)'도 해내지 못한 도전에 나선다. 2018년 이후 6년 만에 프로야구 현장에 복귀한 김경문 감독에겐 산적한 숙제가 쌓여있다.
선수단에 깊게 스며든 패배 의식을 지우는 것이 급선무다.
한화는 올 시즌 류현진, 안치홍 등 주축 선수를 영입하며 단숨에 강팀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고, 시즌 초반 무서운 기세로 1위를 질주했다.
그러나 선발 투수들의 줄부상 및 부진, 타선의 집단 슬럼프가 겹치며 무너졌다.
최하위까지 떨어진 한화는 최원호 전 감독이 풀타임 첫 시즌도 버텨내지 못하고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한화 그룹은 부진의 원인을 중심축에서 찾았다.
팀을 뚝심 있게 이끌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오랜 기간 프로야구를 떠나있던 김경문 감독에게 러브콜하기에 이르렀다.
김 감독이 한화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감독과 관련한 프로야구 각종 역사도 다시 쓰일 전망이다.
김 감독은 통산 1천700경기에 출장해 14시즌 동안 896승 30무 774패를 거뒀다.
통산 900승 달성엔 4승이 남았다.
역대 프로야구 최다승은 김응용 감독의 1천554승(1천288패)이고 김성근(1천388승 1천203패), 김인식(978승 1천33패), 김재박(936승 830패), 강병철 감독(914승 1천15패)이 뒤를 잇고 있다.
김경문 감독은 6위다. 올 시즌 남은 경기를 고려하면 김경문 감독은 올해 안에 역대 4위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
/연합뉴스
KS 준우승만 4차례…김인식·김응용·김성근도 실패한 '한화 우승'의 꿈 도전 2일 한화 이글스 신임 사령탑에 오른 김경문(65) 감독의 야구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신뢰와 뚝심'으로 표현할 수 있다. 김경문 감독은 선수 시절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선 굵은 지도자 철학으로 한국 프로야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포수 출신인 김 감독은 1982년 OB 베어스(현 두산)의 창단 멤버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뒤 짧은 선수 생활을 마치고 만 36세의 젊은 나이에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삼성 라이온즈 배터리 코치를 거친 김 감독은 1998년 친정팀 OB의 배터리 코치로 옮겼고, 2003년 11월부터 두산을 이끌었다. 김 감독은 외풍에 흔들리지 않기로 유명했다.
2006년 신고선수(현 육성선수)로 두산에 입단한 김현수(현 LG 트윈스)를 주변의 반대에도 주전으로 밀어붙인 일화는 유명하다.
타격 실력은 좋지만, 수비와 주루 능력이 낮다는 평가로 신인드래프트에서 프로 구단들의 외면을 받았던 김현수는 김 감독의 안목 덕에 한국 최고의 교타자로 성장했다. 손시헌(현 SSG 랜더스 2군 감독), 이종욱(현 NC 다이노스 코치), 고영민(현 롯데 자이언츠 코치) 등 성실한 모습을 보이는 원석을 가려내 팀의 주축으로 만든 이도 김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2004년부터 2010년까지 7시즌 중 6시즌에서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기도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김경문 감독을 세기의 명장으로 올려놓은 대회였다. 당시 한국은 아마야구 최강 쿠바, 일본 등을 따돌리며 9전 전승으로 사상 첫 금메달 신화를 썼다.
김 감독은 당시에도 대표팀을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부진에 시달리던 '4번 타자' 이승엽(현 두산 감독)을 끝까지 신뢰했고, 이승엽은 일본과 준결승 2-2로 맞선 8회말 극적인 투런 홈런을 터뜨리며 화답해 온 국민에게 전율을 선사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2011년 신생팀인 NC 다이노스 사령탑으로 취임한 뒤에도 자신의 색깔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투수로 뽑았던 간판스타 나성범(현 KIA 타이거즈)을 눈여겨보다가 타자 전향을 밀어붙여 성공했고, 수비가 약하다고 평가받았던 박민우를 주전 2루수로 낙점해 최고 스타로 만들었다.
NC는 1군에 합류한 2013년 9개 팀 중 7위로 선전했고, 이듬해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NC는 김 감독이 중도 사퇴한 2018년 전까지 매년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다. 화려한 지도자 생활을 했던 김경문 감독이지만, KBO리그 우승 반지를 끼지 못한 것은 절절한 한(恨)으로 남아있다.
김 감독은 두산을 이끌던 2005년과 2007년, 2008년 한국시리즈(KS)에서 준우승으로 아쉬움을 삼켰고, NC 창단 후 첫 KS 무대를 밟은 2016년에도 준우승에 머물렀다.
두산과 NC는 김 감독이 잘 다져놓은 토양을 딛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KS 우승의 과실을 따냈지만, 정작 김 감독은 우승의 현장을 함께하지 못했다.
김 감독은 종종 "KS 우승은 내 인생에서 마지막 남은 한"이라며 "KS에서 우승한 뒤 펑펑 눈물을 쏟는 것이 내 인생의 꿈"이라고 말해왔다.
공교롭게도 한화 역시 우승에 목말라 있다.
1999년 이후 24년 동안 우승하지 못한 한화는 그동안 내로라하는 명장을 모셔 왔지만 좀처럼 반등하지 못했다.
'국민 감독' 김인식 감독(2005~2009년), '우승 청부사' 김응용 감독(2013~2014년), '야신' 김성근 감독(2015~2017년)은 모두 한화에서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김인식, 김응용, 김성근 감독은 모두 한화 사령탑 이후로는 프로에 돌아오지 못했다.
김경문 감독은 본인과 한화 구단의 꿈을 향해 '3김(金)'도 해내지 못한 도전에 나선다. 2018년 이후 6년 만에 프로야구 현장에 복귀한 김경문 감독에겐 산적한 숙제가 쌓여있다.
선수단에 깊게 스며든 패배 의식을 지우는 것이 급선무다.
한화는 올 시즌 류현진, 안치홍 등 주축 선수를 영입하며 단숨에 강팀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고, 시즌 초반 무서운 기세로 1위를 질주했다.
그러나 선발 투수들의 줄부상 및 부진, 타선의 집단 슬럼프가 겹치며 무너졌다.
최하위까지 떨어진 한화는 최원호 전 감독이 풀타임 첫 시즌도 버텨내지 못하고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한화 그룹은 부진의 원인을 중심축에서 찾았다.
팀을 뚝심 있게 이끌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오랜 기간 프로야구를 떠나있던 김경문 감독에게 러브콜하기에 이르렀다.
김 감독이 한화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감독과 관련한 프로야구 각종 역사도 다시 쓰일 전망이다.
김 감독은 통산 1천700경기에 출장해 14시즌 동안 896승 30무 774패를 거뒀다.
통산 900승 달성엔 4승이 남았다.
역대 프로야구 최다승은 김응용 감독의 1천554승(1천288패)이고 김성근(1천388승 1천203패), 김인식(978승 1천33패), 김재박(936승 830패), 강병철 감독(914승 1천15패)이 뒤를 잇고 있다.
김경문 감독은 6위다. 올 시즌 남은 경기를 고려하면 김경문 감독은 올해 안에 역대 4위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