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故박채영 선생 항일독립운동 활동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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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독서회 등 조직해 항일운동하다 징역 2년
영암 민간인 희생 사건 등 4건도 진실규명 결정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일제강점기 전남 여수에서 활동하던 박채영 선생의 항일독립운동 업적을 인정했다. 진실화해위는 26일 전날 열린 제81차 위원회에서 박 선생의 항일독립운동 활동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에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권고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박 선생은 1929년 8월 여수지역 독서회 가입을 시작으로 여수에서 항일운동을 벌이다 1936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930년 6월 여수지역 독서회 지도를 맡았던 그는 사회과학연구회·청년전위동맹 등 비밀결사를 조직해 반일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선전지를 뿌렸다. 여수수산학교 내에 독서회를 만들어 민족차별철폐 등을 요구하는 동맹휴학 운동을 이끌었고,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여수적색노동조합준비회를 조직해 여수 내 고무공장·항만운수 노동자 동맹파업에도 관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선생은 해방 후 1948년 여수·순천 10·19사건(이하 여순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아 이듬해 1월 여수 만성리에서 살해당했으나 사형 선고 75년 만인 지난해 10월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고인과 함께 여수수산학교 독서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여순사건으로 함께 사형당한 박창래 선생은 2007년 1기 진실화해위 조사를 통해 항일운동 활동을 인정받은 바 있다. 박 선생의 딸인 박수희(82)씨는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함께 활동한 사람들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는데 아버지는 그렇지 못해 서러웠다"며 "이제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아 좋은 마음은 있지만 아직 멍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씨는 "아버지는 옥살이로 고문을 많이 당해 손발이 다 얼고 늑막염까지 앓으셨다.
돌아가셨을 때도 가족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누가 소식을 전해줘서 알았는데 그때 내 나이가 일곱살이었는데도 아직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위로 언니가 둘, 남동생이 둘인데 동생 하나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며 "(진실규명 결정 소식에) 다들 좋아라 하는데 동생은 함께 듣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한편 진실화해위는 전날 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에 협조했다는 이유 등으로 희생된 전남 영암군 거주민 125명, 경남 밀양 거주민 2명이 희생된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아울러 비슷한 시기 충청지역 교회 30곳에서 기독교인 71명이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 한국전쟁 발발 후 전북 고창군 주민 14명이 군·경의 토벌작전에 의해 희생된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의 사과와 피해회복 조치를 권고했다.
/연합뉴스
영암 민간인 희생 사건 등 4건도 진실규명 결정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일제강점기 전남 여수에서 활동하던 박채영 선생의 항일독립운동 업적을 인정했다. 진실화해위는 26일 전날 열린 제81차 위원회에서 박 선생의 항일독립운동 활동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에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권고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박 선생은 1929년 8월 여수지역 독서회 가입을 시작으로 여수에서 항일운동을 벌이다 1936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930년 6월 여수지역 독서회 지도를 맡았던 그는 사회과학연구회·청년전위동맹 등 비밀결사를 조직해 반일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선전지를 뿌렸다. 여수수산학교 내에 독서회를 만들어 민족차별철폐 등을 요구하는 동맹휴학 운동을 이끌었고,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여수적색노동조합준비회를 조직해 여수 내 고무공장·항만운수 노동자 동맹파업에도 관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선생은 해방 후 1948년 여수·순천 10·19사건(이하 여순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아 이듬해 1월 여수 만성리에서 살해당했으나 사형 선고 75년 만인 지난해 10월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고인과 함께 여수수산학교 독서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여순사건으로 함께 사형당한 박창래 선생은 2007년 1기 진실화해위 조사를 통해 항일운동 활동을 인정받은 바 있다. 박 선생의 딸인 박수희(82)씨는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함께 활동한 사람들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는데 아버지는 그렇지 못해 서러웠다"며 "이제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아 좋은 마음은 있지만 아직 멍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씨는 "아버지는 옥살이로 고문을 많이 당해 손발이 다 얼고 늑막염까지 앓으셨다.
돌아가셨을 때도 가족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누가 소식을 전해줘서 알았는데 그때 내 나이가 일곱살이었는데도 아직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위로 언니가 둘, 남동생이 둘인데 동생 하나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며 "(진실규명 결정 소식에) 다들 좋아라 하는데 동생은 함께 듣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한편 진실화해위는 전날 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에 협조했다는 이유 등으로 희생된 전남 영암군 거주민 125명, 경남 밀양 거주민 2명이 희생된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아울러 비슷한 시기 충청지역 교회 30곳에서 기독교인 71명이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 한국전쟁 발발 후 전북 고창군 주민 14명이 군·경의 토벌작전에 의해 희생된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의 사과와 피해회복 조치를 권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