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유럽 정치 '태풍의 눈'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RN)의 실질 지도자 마린 르펜(56)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부친 장마리 르펜(96)이다. 공수부대 출신인 장마리는 1972년 히틀러의 나치당 이후 가장 극렬한 반유대, 백인우월주의 정당 국민전선(FN)을 창당했다.

창당 4년째이자 마린이 여덟 살 때인 1976년의 일이다. 이들 가족이 살던 집의 전면부가 다 날아갈 정도의 폭탄 테러를 당했다. 이 사건은 마린의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집이 사라진 것은 물론 ‘위험한 가족’으로 찍힌 탓에 친구도 없어졌다. 냉정하고 강인한 기질과 확고한 자기주장, 비타협적 단호함이 이때부터 자라났다.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가 된 마린은 초임 변호사 시절 국선변호사로 불법 체류 이민자를 변호한 일도 있다. 반이민의 선봉장으로선 참 아이러니한 경력이다. 마린의 어머니는 그를 “머리 긴 남편”이라 부르고, 아버지 장마리는 “가슴 큰 나”라고 했다. 그만큼 마린은 아버지를 빼닮았다. 그러나 그의 도약은 부친의 정치적 살해에서 비롯됐다. 2011년 아버지를 이어 당 대표가 된 그는 2015년 홀로코스트를 희화한 발언을 문제 삼아 부친을 제명하며 반유대적 색채를 지웠다. 이후 당명도 ‘국민전선’에서 ‘국민연합’으로 바꾼 뒤 부녀는 완전히 의절했다.

부녀는 합해 일곱 번 프랑스 대권에 도전했다. 아버지는 다섯 번 출마해 한 번 결선투표에 올랐으나, 자크 시라크에게 8 대 2로 참패했다. 딸은 2017년과 2022년 연속 에마뉘엘 마크롱과 결선에서 붙었으며 2022년 42%까지 얻었다. 르펜은 이번 총선을 통해 2027년 프랑스 대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그의 부상에서 세계 정치 풍향계의 몇 가지 큰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먼저 탈가치다. 인권, 약자 배려, 다양성 등 전통의 가치관만으로는 유권자의 표심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에너지 부가세 인하 등 곤궁한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생활형 공약이 먹혀들고 있다. 유연화 전략도 빼놓을 수 없다. 르펜이 당 대표로 내세운 120만 틱톡 팔로어를 가진 29세의 조르당 바르델라의 참신한 이미지에 힘입어 국민연합은 20~30대층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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