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의 재회 혹은 영화와의 작별 <클로즈 유어 아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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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허남웅의 씨네마틱 유로버스영화에서 ‘찾는다, find’는 행위는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나 관람하는 관객 모두에게 중요한 개념이다. 감독이 이야기를 ‘발굴’하고 그에 적합한 이미지를 ‘포착’한다면, 관객은 스크린에 영사되는 여러 정보를 가지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하여 적극적으로 영화를 ‘탐구’한다.
제76회 칸 영화제 칸 프리미어 부문 초청
빅토르 에리세 감독
요 몇 년 새 영화의 위기라는 말이 철 지난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는 듯 한데 산업의 측면에서 극장을 찾는 관객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작품의 관점에서는 사유(思惟)할 수 있게 하는 영화가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럴 때 해결책은 말장난처럼 들릴지 몰라도 사유할 수 있는 영화를 ‘찾아’ 극장을 ‘찾으면’ 된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스페인 출신의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세 번째 장편극 영화다. 장편 데뷔작 <벌집의 정령>이 1973년, 두 번째 장편이 1983년에 발표되었으니, 빅토르 에리세는 필름 영화 시대를 통과해 온 살아 있는 레전드 같은 존재다.참고로, 빅토르 에리세는 1940년생으로 올해 여든네 살이고, 1937년생인 리들리 스콧보다는 세 살이 적고, 1932년생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와는 다섯 살 차이가 난다. 그래서 빅토르 에리세의 영화에는 어딘지 모르게 클래식한 분위기가 물씬하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오프닝부터가 그렇다. 극 중 한때 감독이었던 미겔(마놀로 솔로)이 22년 전에 만들다가 채 완성하지 못한 영화 <작별의 눈빛>의 일부다.고가의 가구가 눈에 띄어 저택이란 걸 알겠는데 몰락한 집안인 듯 사람이 있어도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이곳에 누가 찾아온다. 탐정이다. 탐정이 찾는 이는 이 저택의 주인이다. 거동이 불편한 거구의 유대인 랍비 남자는 하인인 듯한 중국인의 시중을 받으며 탐정과 마주 앉는다.만남을 요청한 건 유대인 남자 쪽이다. 품 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탐정에게 건네니, 중국계 혼혈인 듯한 젊은 여자가 찍혀 있다. 탐정에게 거액을 약속한 저택의 주인은 죽기 전에 꼭 보고 싶다며 유일한 혈육인 내 딸을 ‘찾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몇 분 되지 않은 이 오프닝 장면의 룩(look)은 오래된 영화를 보듯 빛이 바랬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필름으로 촬영한 까닭이다.여자를 ‘찾아 나선’ 탐정의 영화 <작별의 눈빛>을 경유해 <클로즈 유어 아이즈>가 ‘찾으려는’ 대상, 아니 가치는 이제는 잘 사용하지 않는 필름처럼 지금은 웬만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 ‘영화란 무엇인가’에 관한 답변이다. 영화에서 질문은 관객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연출법이다.
그럼으로써 감독은 답을 구하려는 관객과 작품을 통해 관계를 맺는다. 영화는 이렇게 양 방향적인 매체로 감독은 스크린에 정보를 채워 넣고 관객은 이야기와 이미지와 사운드를 종합한 작품의 행간을 ‘찾아’ 자신만의 기준으로 해석한다. 그러니까, 빅토르 에리세의 작품에서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힌트를 ‘찾으려면’ <클로즈 유어 아이즈>와 극 중 영화 <작별의 눈빛> 사이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클로즈 유어 아이즈>가 <작별의 눈빛>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이 영화를 찍던 중 탐정 캐릭터를 맡았던 배우이자 미겔의 친구인 훌리오(호세 코로나도)가 사라져서다. 그 후로 22년이 지났다. 미겔은 전처럼 영화를 찍지 않는 대신 책을 쓰고 있다. 그러던 중 TV 탐사 프로그램에 나가 훌리오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를 얻는다.그는 왜 사라진 걸까. 납치된 걸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까, 사고 후 행방불명된 것일까. 미겔은 훌리오의 딸을 비롯해, 함께 영화를 작업한 스태프 등 관련한 인물들을 ‘찾아’ 간다. 그리고 훌리오가 오래 전 기억을 잃고 현재 어느 수녀원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사 끝에 확인한다. 22년 만에 만난 훌리오는 미겔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누군가를 ‘찾아’야 하는 극 중 탐정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정작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 그건 단순히 훌리오에만 해당하는 조건은 아니다. 미겔도 <작별의 눈빛>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상실감과 자식을 잃었던 과거의 아픔을 대면하기 힘들어 더는 기억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두뇌에 먼지가 쌓인 것처럼 오랜 시간을 견뎌왔다.타의로, 자의로 각각 기억을 잃은 훌리오와 미겔처럼 필름 영화 역시 이제는 디지털과 컴퓨터 그래픽에 밀려 허름한 극장 창고의 녹슨 필름 깡통에 처박힌 신세로 전락했다. 이제는 필름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시설도 거의 없다 보니 필름의 처지란 22년 전 실종된 훌리오와 다를 바가 없다.그렇다면 훌리오는 필름의 은유인 셈이고, 훌리오를 ‘찾으려’ 애쓰는 미겔은 필름을 찍는 방식으로 <클로즈 유어 아이즈>를 작업한 빅토르 에리세 감독 본인이자, 필름 영화에 관한 향수와 애정을 간직하고 있는 관객이라 할 수 있다.
빅토르 에리세는 이런 인터뷰를 했다. “이제 우리는 뤼미에르 형제가 원래 의도했던 대로 이미지를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제조하고 있다. 나에게 분명한 것은 디지털 시네마는 시청각 매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필름과 같지 않다.” 그의 말처럼 빅토르 에리세는 <클로즈 유어 아이즈>를 작업하며 빛을 보정한 정도만 제외하고는 컴퓨터의 도움을 받지 않았고 영화에 적합한 이미지를 포착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블록버스터가 대중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멀티플렉스가 흥행에 특화된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주는 지금 <클로즈 유어 아이즈>처럼 영화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작품을 극장에서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됐다.
그래서 필름의 질감이 살아 있는 영화를, 블록버스터와 다른 차원의 작품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는 건 연락이 끊겼던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안부를 묻는 일이면서 동시에 헤어지면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기약할 수 없는 아쉬운 감정을 안고 건네는 작별 인사와도 같다. 이 영화의 제목이 ‘눈을 감아 보아요, Close Your Eyes’인 이유가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마지막은 여전히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훌리오를 위해 미겔이 극장을 빌려 <작별의 눈빛>을 상영하는 장면에 할애된다. 미겔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식의 존재도 알아채지 못하는 훌리오는 <작별의 눈빛> 속 자기가 연기했던 탐정이 의뢰받아 데려온 저택 주인의 딸이 등장하자 스크린에 손을 대고 눈을 감으며 교감하는 포즈를 취한다.영화 속 만남의 순간과 동시에 실제 영화가 끝나는 편집의 효과는 오랜 여운을 남긴다. 빅토르 에리세는 엔딩 장면의 의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마지막 부분에서 내가 남긴 질문은 ‘그것은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일까?’였다. 그것은 일종의 도전이었다. 그 답은 관객 수만큼 다양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관객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는 빅토르 에리세의 의도에 개인적인 의견을 더하자면, 영화는 기억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빅토르 에리세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예’이다. 단, 영화가 질문을 탑재해 관객에게 답변을 ‘찾게’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을 때 유효하다는 조건을 달고 싶다.
빅토르 에리세의 오랜만의 영화가 반가우면서도 이런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지금의 영화 산업 환경을 생각하면 회의적이라 마지막 인사처럼 다가왔다. 그래도 희망을 남겨두고 싶은 이유는 <클로즈 유어 아이즈>와 같은 영화를 ‘찾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극장을 ‘찾는다’면 영화는 계속해서 좋은 기억을 우리에게 남겨줄 것이라서다.[클로즈 유어 아이즈┃메인 예고┃빅토르 에리세 감독 작품]
허남웅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