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너머 펼쳐진 사파의 몽환적 세계, 호텔 드 라 쿠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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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건축가 ‘빌 벤슬리(Bill Bensley)’는 그 이름 하나만으로 호텔계 고유명사로 통한다. 해발 3,143m의 판시판 산을 품은 베트남 북부 사파(Sa Pa)에도 그의 영감이 깃든 호텔이 2008년 문을 열었다.
‘호텔 드 라 쿠폴 – 엠 갤러리 사파(Hotel de la Coupole – M Gallery Sapa, 이하 호텔 드 라 쿠폴)’에서는 객실 창 밖으로 펼쳐진 계단식 논밭과 우뚝 솟은 봉우리 등 풍부한 자연환경과 베트남 소수민족 레드 자오족(Red Dzao)의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사파를 설명할 때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수식어는 바로 ‘베트남의 스위스’. 사파는 인도차이나의 지붕이라 불리는 판시판 산맥과 다채로운 소수민족 공동체 덕분에 자연의 아름다움과 문화적 풍요로움이 공존하는 곳이다. 최근에는 황정민, 유재석, 지석진, 양세찬이 어플을 사용하지 않고 여행하는 유튜브 콘텐츠 ‘풍향고’의 여행지로 사파를 택하면서 국내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한국에서 베트남까지 비행기로 5시간,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Noi Bai International Airport)에서도 버스로 5시간 남짓. 무려 10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쉽지 않은 여정 끝에 다다른 사파에서 제일 처음 마주한 것은 뿌연 안개다.
고산지대에 위치해 연중 습도가 높고 안개가 많이 끼는 사파는 특히 겨울철이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며칠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수려한 자연환경을 감상하기 위해 사파를 찾은 여행객에게 슬픈 상황이지만, 이 안개가 호텔 드 라 쿠폴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한층 더한다.로비로 들어서면 마술쇼를 방불케 하듯 허공에 떠 있는 모자들과 쌓여있는 여행용 트렁크가 여행자들을 반긴다. 누군가는 일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인공 소피가 일하는 모자 공방을 상상하고, 누군가는 영화 ‘해리포터’에서 해리가 호그와트 마법 학교로 떠나기 위해 트렁크 여러 개를 싣고 달리는 9와 4분의 3 정거장을 떠올리는 등 로비에서부터 여행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가득하다.
벤슬리는 호텔 드 라 쿠폴의 오트 쿠튀르 분위기를 위해 호텔 객실과 복도 등에 500점의 빈티지 패션 일러스트레이션과 광고 작품을 걸었고, 로비의 리셉션 데스크는 다양한 색의 산업용 실로 인테리어해 공방 분위기를 살렸다. 객실 내부에도 마네킹에 오트 쿠튀르를 상징하는 진주 혹은 소수민족의 전통 공예품으로 장식한 오브제를 배치했다.클래식, 슈페리어, 디럭스, 디럭스 스위트, 이그제큐티브 스위트, 프레지덴셜 스위트 총 6개의 룸 타입에 총 249개 객실을 보유한 이곳은 룸 형태를 그린, 옐로우, 레드, 핑크 등의 색상으로 구분한다. 스위트룸의 이름은 공방 콘셉트를 살려 코듀로이, 모헤어, 레이온 등 옷감 이름에서 따왔다. 가장 좋은 객실인 ‘태피터(Taffeta, 광택이 있는 빳빳한 견직물)’라는 이름의 프레지덴셜 스위트는 이 호텔에 단 한 개만 있는 룸 형태로, 객실 내에 프라이빗 사우나 시설과 서재가 있다.호텔 드 라 쿠폴의 독특한 구조는 호텔의 신비로운 매력을 한층 더 배가시킨다. 마치 미로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범하지 않은 이 호텔의 구조는 우리나라 전통 한옥처럼 한 가운데 중정을 품고 있는 듯하지만 그것보다는 누워 있는 사다리에 가까운 형태다. 위아래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가 있어 건물 간 이동이 자유롭다.레스토랑, 스파, 키즈룸, 헬스장 등 호텔의 다양한 부대시설 중 단연 하이라이트는 온수풀 ‘르 그랑 바상(LE GRAND BASSIN)’과 호텔의 최고층에 위치한 ‘압생트 바(ABSINTHE BAR)’. 프랑스어로 큰 연못을 의미하는 수영장은 청동 조각상과 붉은색의 샹들리에, 초록색의 대리석 기둥이 어우러져 포토 스폿으로 꼽힌다.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따듯한 물이 상시 공급되고 있어 쌀쌀한 사파 날씨에 움츠러든 몸을 녹이며 물놀이를 즐기기 좋다.건물의 가장 높은 층에 자리한 압생트 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조물은 아치형의 천장 구조다. 기존 베트남 건축 양식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 건축 형태는 프랑스 건축 양식에서 따 왔다. 호텔 이름의 쿠폴 역시 불어로 둥근 지붕, 천장을 의미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벤슬리는 돔 형태의 압생트 바 천장에 많은 공을 들였다. 반짝반짝 빛을 내며 반짝이는 천장의 타일은 무려 1만 7000개로, 수작업을 통해 완성했다.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호텔 드 라 쿠폴 – 엠 갤러리 사파(Hotel de la Coupole – M Gallery Sapa, 이하 호텔 드 라 쿠폴)’에서는 객실 창 밖으로 펼쳐진 계단식 논밭과 우뚝 솟은 봉우리 등 풍부한 자연환경과 베트남 소수민족 레드 자오족(Red Dzao)의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사파를 설명할 때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수식어는 바로 ‘베트남의 스위스’. 사파는 인도차이나의 지붕이라 불리는 판시판 산맥과 다채로운 소수민족 공동체 덕분에 자연의 아름다움과 문화적 풍요로움이 공존하는 곳이다. 최근에는 황정민, 유재석, 지석진, 양세찬이 어플을 사용하지 않고 여행하는 유튜브 콘텐츠 ‘풍향고’의 여행지로 사파를 택하면서 국내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한국에서 베트남까지 비행기로 5시간,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Noi Bai International Airport)에서도 버스로 5시간 남짓. 무려 10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쉽지 않은 여정 끝에 다다른 사파에서 제일 처음 마주한 것은 뿌연 안개다.
고산지대에 위치해 연중 습도가 높고 안개가 많이 끼는 사파는 특히 겨울철이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며칠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수려한 자연환경을 감상하기 위해 사파를 찾은 여행객에게 슬픈 상황이지만, 이 안개가 호텔 드 라 쿠폴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한층 더한다.로비로 들어서면 마술쇼를 방불케 하듯 허공에 떠 있는 모자들과 쌓여있는 여행용 트렁크가 여행자들을 반긴다. 누군가는 일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인공 소피가 일하는 모자 공방을 상상하고, 누군가는 영화 ‘해리포터’에서 해리가 호그와트 마법 학교로 떠나기 위해 트렁크 여러 개를 싣고 달리는 9와 4분의 3 정거장을 떠올리는 등 로비에서부터 여행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가득하다.
레드 자오족과 오트 쿠튀르의 만남
호텔 드 라 쿠폴의 아이덴티티를 차곡차곡 쌓아 올릴 수 있게 도움을 준 것은 바로 모자다. ‘Buy first, think later’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맥시멀리스트로 유명한 빌 벤슬리의 집에는 전 세계 각지에서 모은 아이템을 쌓아두는 창고가 있다. 창고에서 우연히 그의 눈에 띈 도트 무늬 모자가 호텔 드 라 쿠폴의 DNA가 됐다.파리의 거리에서 발견한 이 모자는 1920년대 오트 쿠튀르 스타일로, 베트남식 라탄 모자 형태에 흰색과 빨간색 폴카 도트 패턴으로 디자인돼 있다.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호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프랑스의 어느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의 공방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로 꾸몄다. 베트남 소수 민족 레드 자오족의 전통 의상과 문화가 호텔의 콘셉트를 완벽하게 완성하는데 한몫을 더했다.레드 자오족은 빨간색 터번과 같은 스카프를 머리에 쓰고 다니는 것이 특징으로, 레드 자오족의 레드도 이 터번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호텔 로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조명은 레드 자오족 여성이 결혼할 때 신부가 쓰는 모자를 모티브로 제작한 것이다. 호텔 내 드라이어를 담는 파우치와 두루마리 휴지를 담는 주머니, 비누 받침대 등 수공예품은 사파 지역 내 소수민족 장인들과 협력해 만든 것으로, 구입도 가능하다.상상력을 자극하는 빌 벤슬리의 마법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조경을 전공한 빌 벤슬리는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조경가이면서 아티스트다. ‘JW 메리어트 푸꾸옥 에메랄드 베이 리조트 앤 스파’, ‘인터컨티넨탈 다낭 선 페닌슐라 리조트’, ‘카펠라 우붓 발리’, ‘JW 메리어트 제주 리조트&스파’ 등 전 세계에 독창적인 콘셉트의 200여 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그가 디자인한 호텔만 골라 투숙하는 여행 패키지가 있을 정도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다.벤슬리는 호텔 드 라 쿠폴의 오트 쿠튀르 분위기를 위해 호텔 객실과 복도 등에 500점의 빈티지 패션 일러스트레이션과 광고 작품을 걸었고, 로비의 리셉션 데스크는 다양한 색의 산업용 실로 인테리어해 공방 분위기를 살렸다. 객실 내부에도 마네킹에 오트 쿠튀르를 상징하는 진주 혹은 소수민족의 전통 공예품으로 장식한 오브제를 배치했다.클래식, 슈페리어, 디럭스, 디럭스 스위트, 이그제큐티브 스위트, 프레지덴셜 스위트 총 6개의 룸 타입에 총 249개 객실을 보유한 이곳은 룸 형태를 그린, 옐로우, 레드, 핑크 등의 색상으로 구분한다. 스위트룸의 이름은 공방 콘셉트를 살려 코듀로이, 모헤어, 레이온 등 옷감 이름에서 따왔다. 가장 좋은 객실인 ‘태피터(Taffeta, 광택이 있는 빳빳한 견직물)’라는 이름의 프레지덴셜 스위트는 이 호텔에 단 한 개만 있는 룸 형태로, 객실 내에 프라이빗 사우나 시설과 서재가 있다.호텔 드 라 쿠폴의 독특한 구조는 호텔의 신비로운 매력을 한층 더 배가시킨다. 마치 미로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범하지 않은 이 호텔의 구조는 우리나라 전통 한옥처럼 한 가운데 중정을 품고 있는 듯하지만 그것보다는 누워 있는 사다리에 가까운 형태다. 위아래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가 있어 건물 간 이동이 자유롭다.레스토랑, 스파, 키즈룸, 헬스장 등 호텔의 다양한 부대시설 중 단연 하이라이트는 온수풀 ‘르 그랑 바상(LE GRAND BASSIN)’과 호텔의 최고층에 위치한 ‘압생트 바(ABSINTHE BAR)’. 프랑스어로 큰 연못을 의미하는 수영장은 청동 조각상과 붉은색의 샹들리에, 초록색의 대리석 기둥이 어우러져 포토 스폿으로 꼽힌다.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따듯한 물이 상시 공급되고 있어 쌀쌀한 사파 날씨에 움츠러든 몸을 녹이며 물놀이를 즐기기 좋다.건물의 가장 높은 층에 자리한 압생트 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조물은 아치형의 천장 구조다. 기존 베트남 건축 양식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 건축 형태는 프랑스 건축 양식에서 따 왔다. 호텔 이름의 쿠폴 역시 불어로 둥근 지붕, 천장을 의미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벤슬리는 돔 형태의 압생트 바 천장에 많은 공을 들였다. 반짝반짝 빛을 내며 반짝이는 천장의 타일은 무려 1만 7000개로, 수작업을 통해 완성했다.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