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어떤 상황에서도 기업 경영·사업계획 흔들림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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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3
한국 정치 불안, 경제·산업에 큰 악재지만경제 앞날이 그야말로 ‘시계 제로’다.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가 있기 전부터 우리 경제는 내리막길이었다. 내수 부진이 길어지고 수출마저 둔화 움직임이 역력해지면서 지난달 말 한국은행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9%로 낮췄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최근 내놓은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500대 기업 중 내년 투자계획을 아직 수립하지 못한 기업이 56.6%, 투자계획이 없다는 기업이 11.4%에 이르렀다. 우리 경제가 성장률, 수출 증가율, 물가 상승률 모두 1%대로 떨어져 활력을 잃어버리는 ‘1·1·1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모두 일손 놓고 움츠러들어선 위기극복 못해
이번 사태의 후폭풍은 예측하기조차 힘들다. 계엄이 헌법 절차에 따라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대거 매도에 나서면서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이 2000조원 밑으로 쪼그라들었다. 원·달러 환율은 한때 1440원대로 치솟기도 했다.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비상계엄 후 시위와 집회가 연일 이어지면서 세계 각국은 한국 여행에 주의·경고를 내리고 있다. 앞으로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는 절차가 본격 진행되면 극심한 정치 혼란이 빚어질 수도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이 정치 불안 국가로 낙인찍히면 수주와 수출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한국에 주는 크레디트라인을 축소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하지만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경제는 돌아가야 한다. 모두 일손을 놓고 움츠러들기만 하면 수출, 투자, 소비 모두 내리막길을 걷는 구조적 불황에 빠질 수 있다. 대내외 돌발적 위기에 따른 경제 불안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과거 오일 쇼크, 10·26 사태, 외환위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 등에서도 초기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리 국민은 성공적으로 새로운 반전을 이뤄냈다. 그 중심엔 늘 기업과 기업인들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비상 상황에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을 만들되 내년도 사업계획은 정상적으로 수립하고 집행해 나가야 한다. 특히 기술·사업 혁신을 위한 투자와 구조조정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자율주행, 바이오, 항공우주 등 첨단산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정도(正道)다. 중국의 물량 공세에 밀리거나 부가가치가 낮은 사업은 적극적으로 정리하고 재편하는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
더욱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세계 경제·산업 안보 지형이 급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 관료들이 사실상 손을 놓아서도 안 되겠지만, 무엇보다 기업들 스스로 대외 정세 변화에 안테나를 예민하게 세우고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다각도로 모색해야 한다. 기회는 위기 속에서 움튼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넘어설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고 위기극복형 기업가정신을 본격적으로 발휘할 때다. 모든 기업이 각자 위치에서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만이 우리 경제에 불어닥친 위험을 완화 내지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