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죽인 공직사회…"연말 일정 취소"

박근혜 탄핵 트라우마에
관가 복지부동 더 두드러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가 시작되자 공직 사회가 일제히 업무를 손에서 놓고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적폐 청산을 지켜본 경험 때문에 공직 사회의 복지부동이 더 두드러진다는 평가도 나왔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교육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주요 중앙부처는 6일 예정된 내·외부 회의와 일정을 대부분 조정하거나 취소했다. 1급 이상 공무원들은 연말에 몰려 있던 대외 행사들도 대부분 취소 또는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내수 부양을 위해) 계획된 연말 행사를 그대로 진행해달라”고 당부했지만, 상당수 기재부 직원도 개인적 약속을 연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부처의 한 관계자는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장소에서 공무원들이 술을 먹고 있는 게 눈치가 보인다”며 “개인 약속들은 대부분 취소했고 당분간 약속도 잡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각 부처가 확대간부회의 등을 통해 차질 없는 업무 수행을 당부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주요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기재부 사무관 A씨는 “실무자들은 맡은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아무래도 간부들이 비상 상황 대응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 있어 정책을 추진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서기관 B씨는 “이번 사태와 관계없이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면서도 “한 후배가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당분간 쉴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듣고 조금은 허탈했다”고 전했다.

보수적인 관가의 내부 익명 게시판에 정치 성향이 묻어나는 의견들도 제기되고 있다. 기재부 내부 익명 게시판에 최근 ‘한 명의 돌아이가 어떻게 나라를 망치는가’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온 후 “정치 얘기는 자제해달라”는 반대 의견이 제기되자 이에 대한 찬반 댓글이 잇따랐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미 탄핵 정국을 경험한 학습효과가 있어 공직 사회가 더 움츠러드는 것 같다”며 “대다수 공무원이 향후 정치 상황을 지켜본 후 움직이려고 할 것”이라고 전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