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전처에 재산 맡기긴 싫은데"…해법은 유언대용신탁 [조웅규의 상속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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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은행 잔액 3년새 4배 폭증
독립성과 전환기능 장점 부각
비금융권도 수탁자 가능 예정
한경 로앤비즈의 전문가 기고칼럼인 'Law Street'는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갑자기 사업이 어려워져도 자녀 상속금은 건드릴 수 없죠."30억원의 자산을 보유한 A씨(52)는 최근 시중은행의 유언대용신탁 상품에 가입했다. 20억원은 자녀 상속용으로 신탁하고, 10억원은 노후자금으로 남겼다. 사업하는 그는 "만에 하나 부도가 나도 신탁해둔 자녀 몫은 채권자들이 가져갈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일반 유언이었다면 A씨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여전히 그의 재산이라 빚 변제에 써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언대용신탁은 다르다. 재산을 미리 수탁자에게 이전해 독립시켜놓기 때문에 위탁자의 채무와 완전히 분리된다.
유언대용신탁이 '살아생전 상속설계'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신탁은 전 세계적으로 오랜 기간 유언을 대체하는 상속 수단으로 활용됐다. 피상속인의 의사를 다양하고 탄력적으로 실현할 수 있어서다. 해외에선 세제 혜택이나 상속비용 절감 효과도 크다. 다만 우리나라는 이런 혜택이 제한적이다.그런데도 전문가들은 A씨 사례처럼 유언대용신탁의 가장 큰 장점으로 '신탁재산의 독립성'을 꼽는다. 신탁을 설정하면 재산 소유권이 수탁자에게 이전돼 위탁자나 수탁자의 채무와 완전히 분리된다
올 2분기 말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3조5150억원으로, 2020년 대비 4배 폭증했다. 최근엔 보험금청구권도 신탁이 가능해져 수요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아들이 성인 될 때까지 재산 지켜주세요"
두 번째 장점은 '신탁의 전환기능'이다. 일반 상속은 사망과 동시에 재산이 상속인에게 이전되지만, 신탁은 수탁자가 재산을 관리하면서 수익권 형태로 전환해 승계할 수 있다. 특히 미성년자나 재산관리 능력이 부족한 상속인을 보호하는 데 유용하다.말기 암 환자 B씨의 고민은 달랐다. 월 2000만원의 임대수익이 나는 건물을 소유했지만, 낭비벽 있는 전처가 미성년 아들의 법정대리인이어서 걱정이 컸다. 아들이 단독 상속인이라 박씨가 사망하면 모든 재산은 아들에게 가고, 전처가 법정대리인 자격으로 관리하게 된다.
결국 B씨는 유언대용신탁을 택했다. 아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는 수탁자가 건물을 관리하면서 월 임대수익 중 일부로 학비·생활비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적금으로 불리도록 했다. 성년이 된 후에야 건물 소유권과 적립금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게 설계했다.
여기에 재미있는 장치도 더했다. 대학 진학 시 장학금 수령, 봉사활동 실적 등 조건을 달성할 때마다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게 한 것. B씨는 "아들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비금융권도 수탁자 가능해져
이처럼 국내에서는 해외와 달리 세제 혜택이나 상속비용 절감 혜택이 제한적이지만 다른 장점이 부각되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신탁재산의 독립성을 통해 재산승계 플랜을 보다 안정적이고 확실하게 실현할 수 있다. 신탁의 전환기능은 상속인의 상황에 맞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재산승계 플랜을 마련하여 피상속인의 사후에도 그의 의사가 상속재산의 분배에 구체적이고 지속해서 미칠 수 있는 이른바 '죽은 자의 지배'를 가능케 한다.
현재 국내 유언대용신탁은 대부분 금융기관이 수탁자가 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신탁의 설정, 유지, 집행을 위해 적지 않은 수수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우리 신탁법은 금융기관이 수탁자가 되는 유언대용신탁 이외에도 위탁자 스스로가 수탁자가 되거나 금융기관이 아닌 자가 수탁자가 되는 방식의 유언대용신탁도 도입 예정이므로 각자의 구체적인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또 상속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법률 검토가 중요하다. 금융기관은 구체적 법률상담에 한계가 있어 복잡한 상속 관계라면 전문가 자문이 필수다. 유언대용신탁은 종래의 유언이나 법정상속과 달리 피상속인의 의사가 보다 구체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보다 섬세한 설계가 핵심일 것이다. 최근 많은 로펌에서 유언대용신탁에 관심을 가지고 영역을 넓히고 있는 이유이다.
조웅규 법무법인(유한) 바른 파트너 변호사 l 서울대 법학대학 학사, 동 대학원 석사(민법/신탁법 전공)를 졸업하고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에서 1년간 연수했다. 상속자문·상속분쟁·기업승계 등 자산관리와 자산승계 분야 전문 변호사로 대기업 및 중견·중소기업 오너 일가의 상속재산분할, 유류분 반환청구 등 다수의 상속분쟁 및 상속자문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국내 최초로 로펌 내 종합자산관리센터인 'Estate Planning Center'의 설립을 주도하여 현재 자산승계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다. 중견기업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삼성전자, 삼성생명,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성균관대, 부산외국어대 최고국제경영자과정(AMP), 전미한인공인회계사협회, 어바인 한인상공회의소 등에서 많은 강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