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파괴된 관계와 잘못된 목표에 대한 해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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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목 열매전 세계적으로 200만 부 이상 팔린 <향모를 땋으며>로 ‘베스트셀러 작가’ 호칭을 얻은 로빈 월 키머러는 북미 인디언 원주민 출신 여성 과학자다(향모: 논밭 두렁 등에서 사는 여러해살이풀의 일종). 인간에게 온갖 풍요를 선물하는 땅과 자연에 대한 감사를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표현하는 저자는 지난 11월 중순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화제인 책 <채진목 열매(The Serviceberry)>를 통해 생태학과 경제학 그리고 윤리학의 직조를 시도한다.
인디언 출신 작가의 에세이
채진목 열매 따면서 얻은 통찰
생생하게 전달해 美 언론 호평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지만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던 ‘채진목 열매’의 삶을 통해 자연의 풍요로운 선물에 감사하는 법을 가르친다. 인간과 자연이 상호 의존에서 착취 관계로 바뀌고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지 차분하게 짚어보면서, 지구 생태계와 인간의 삶을 다시 새롭게 설계하기 위한 구체적인 비전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로빈 윌 키머러의 책들에는 일관된 맥락이 있다. 척박한 환경을 견디고 다른 생명이 살 터전을 만들어주는 ‘이끼’의 삶에 대한 관찰을 시작으로, 모든 식물 가운데 대지에서 가장 먼저 자라기 시작한, 그래서 성스러운 식물로 여겨지는 향모의 삶에 대한 성찰, 그리고 이번에는 빨간색, 파란색, 보라색의 다채로운 열매를 새와 야생동물에게 선물하는 채진목의 삶을 통해 대자연과 인간이 서로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지 알려준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어느 날 저녁 무렵, 저자는 다양한 새와 어우러져 채진목 열매를 따며 자연의 풍요로움을 만끽한다. 새들이 분주하게 열매를 따서 운반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별다른 노력 없이 얻은 풍요로움에 대한 감사와 호혜의 마음을 표현한다.
“세상을 ‘선물’이라고 여기는 것은 ‘상호성의 관계 안에 속해 있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고, 책임감 있게 만듭니다. 무언가를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사물의 물리적 요소는 변하지 않지만, 그것과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변화합니다. 상점에서 구매한 모직 모자는 당신을 따뜻하게 해주지만, 가장 좋아하는 이모가 손수 뜨개질해서 만들어준 모자라면 당신은 그 모자와 매우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당신은 구매한 모자보다 선물로 받은 모자에 훨씬 더 큰 애착을 가질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관계로 맺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물’ 사고의 힘입니다.”<채진목 열매>는 얇은 책이지만 아름다운 언어와 생생한 이미지로 독자를 설득한다. 희소성, 경쟁, 일방적 착취, 축적과 같은 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현대자본주의 경제에서 감사와 호혜, 공존, 상호 의존의 중요성을 환기한다. 우리가 자연이 선사하는 열매나 천연자원 그리고 대자연의 숲에 감사하고 상호관계와 호혜의 원리에 의해 다룰 수 있다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지속 가능하고 풍요로울 수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자연의 선물을 상품으로만 취급하고, 무자비하게 착취하며, 절제하지 못하고 계속 함부로 대할 때 그 결과가 얼마나 절망적일지도 경고한다. 그래서 미국 주요 언론들은 이 책에 대해 “파괴된 관계와 잘못된 목표에 대한 ‘해독제’” “고독과 무기력의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돕는 ‘나침반’”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