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상법 아닌 자본시장법 개정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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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충실의무' 도입 신중해야일본 와세다대 로스쿨에서 회사법을 담당하는 도리야마 교이치 교수가 지난 10월 한국기업법학회 학술대회에서 ‘주식회사 이사의 선관주의의무와 충실의무’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일본 회사법과 구조가 같은 한국 상법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규정을 개정한다는 데 관심이 컸을 것이다.
주주에 도움되는 해법 모색을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그의 기조 발제는 무슨 대단한 새 이론을 설파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던 상법의 기본 원리를 환기해 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감동이 컸다. 발표의 요지는 현재 일본에서는 물론 한국 상법 아래에서도 주주가 직접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의 소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사가 주주에게 직접 충실의무를 부담하는 방향의 한국 상법 개정이 왜 필요한지 의아스럽다는 것이다.일본 판례를 보면 도쿄고등법원 2019년 7월 17일 판결에서 신주예약권부사채의 불공정 발행을 이유로 소수주주가 일본 민법과 상법 규정을 원용해 직접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한국에서도 똑같다. 얼마 전 국민연금이 2014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 합병을 이유로, 당시 삼성물산 이사들을 상대로 손배해상 청구권의 10년 소멸시효가 만료하기 전인 지난 9월 13일 서둘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주주가 그들의 이익을 침해당한 것으로 여겨지면 법을 개정하지 않은 지금도 얼마든지 이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할 수 있고 실제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기업 리밸런싱(구조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보거나 대주주가 차지하는 만큼의 시너지를 얻지 못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일본과 한국이 같다. 일본에서는 2005년 일본 회사법 제정 때 제5편(조직 재편, 합병, 회사 분할, 주식 교환 및 주식 이전)에 합병 반대주주는 자기가 소유한 주식에 대해 ‘공정한 가격’으로 매수할 것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다만 일본은 공정한 가격을 발견하는 방법을 법률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도쿄지방법원의 올해 3월 23일 판결은 ‘공정한 가격’을 확정하는 방법으로 시장 가치 및 동종 사례에서의 프리미엄 평균값 또는 중간값, 회사가 선임한 제3자 평가기관 및 이사회 내 특별위원회가 선임한 제3자 평가기관의 주식 가치 산정 결과, 협상 과정에서 특별위원회가 위 제3자 평가기관의 전문적 자문을 바탕으로 결정한 협상 방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가격이라고 판시하고 있다.독일은 이 문제를 ‘조직재편법’에서 다루고 있다. 합병·분할 계약 체결 시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이사를 상대로 손해를 본 주주들은 직접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반주주를 위해 법을 개정한다면 상법 제3편 제10절(합병)과 제11절(분할합병) 부분 또는 상법의 특별법인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면 된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2일 자본시장법 개정 의지를 밝혔는데, 일본에서 정한 ‘공정한 가격’ 대신에 ‘공정한 가액’ 개념을 도입하려고 한다. 일본의 입법례와도 상통하는 제안이며, 일반주주에게 도움이 되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다.
본래 충실의무란 이사가 그 지위를 이용해 회사 재산을 편취하지 말라는 의미인데, 이사가 회사 재산이 아니라 주주 재산을 편취한다는 것은 그다지 가능성이 없다. 현재의 상법 개정 논의 자체가 소액주주 보호와는 초점이 맞지 않는다. 초점도 맞지 않는 엉뚱한 상법 개정 논의를 중단하고 일반주주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자본시장법 개정이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