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스타였던 ‘늙은’ 여배우…‘젊음’에 대한 집착으로 괴물이 되어 간다

제77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각본상 수상
제49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미드나잇 매드니스 관객상 수상작

코랄리 파르자 감독의
영화

데미 무어의 귀환
젊음에 대한 집착으로 성형했던
실제 삶이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

바디 호러에 대한 폭발적인
페미니스트적 해석
50세 생일을 맞은 여배우. 그녀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walk of fame)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화려한 커리어를 유지해왔지만, 올해 생일만큼은 다르다. 유일하게 남은 에어로빅 프로그램에서도 이젠 그녀를, 그리고 그녀의 늙은 육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방송국으로부터 생일 선물과 해고 통지를 동시에 받은 그녀는 망연자실한다. 그러한 그녀에게 젊음을 돌려주겠다는 전화가 걸려 오고 절박한 심정의 여자는 익명의 남자가 불러주는 주소의 장소에서 주사기와 앰플이 들어있는 박스를 받는다. 그리고 앰플을 사용한 그날, 마치 화산의 용암처럼 그녀의 피부를 뚫고 젊은 육체가 흘러나온다.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코랄리 파르자 감독의 <서브스턴스>는 올해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모든 작품 중에 가장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영화의 화제성은 주로 두 가지 요소에 기반한다. 첫째는 영화의 놀라운 재현 수위다. <서브스턴스>는 젊은 육체가 늙은 육체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과정을 영화사상 가장 독특하면서도 잔인한 방법으로 재현했다. 특히 영화 후반에서 드러나는 인체의 변이 과정은 랜드마크로 언급되는 고어 영화들에 준하거나 그를 능가하는 파격적인 수위로 보인다.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두 번째 이슈는 역시 주연배우인 데미 무어의 귀환이다. 엄밀히 말하면 데미 무어의 귀환 자체에 대한 화제라기보다 그녀가 이 영화를 통해 보여준 놀라운 연기와 그녀의 실제 삶. 즉, 무어가 여러 차례 성형수술을 감행하면서 보여주었던 젊음에 대한 집착이 영화에 고스란히 자기 반영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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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브스턴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서브스턴스>는 한 물간 배우,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이 주사를 맞으면 젊은 본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회춘 키트’를 받으며 전개가 된다. 영화는 늙은 엘리자베스가 단순히 주사 한 대로 젊은 '수(마가렛 퀄리)'로 변신하는 (앞선 대중 영화들에서도 종종 보여졌던) 쉽고도 흔한 설정을 피한다.

엄밀히 말하면 젊은 육체는 늙은 육체의 등골을 뚫고 새로 탄생하는 젊은 육체이자 자아다. 젊은 육체는 늙은 육체의 골수를 수혈받는 방식으로 일주일을 연명한다. 여기서 하루만 더 지체하게 되도 늙은 육체는 되돌릴 수 없는 몇백 배의 노화를 감내해야 한다.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이렇게 엘리자베스와 수는 일주일씩 돌아가며 이중생활을 시작한다. 젊은 수는 엘리자베스가 진행하던 에어로빅 프로그램의 호스트로 시작해 보그의 커버를 장식하기까지 젊은 시절의 엘리자베스의 유명세를 고스란히 부활시킨다. 문제는 유명세를 맛본 '수'가 일주일의 법칙을 위반하기 시작하며 발생한다. 몇 주 동안 수는 엘리자베스의 골수를 뽑아 먹으며 화려한 셀러브리티의 인생을 즐기고, 동시에 엘리자베스는 시체와 다름없는 노인으로 노화해버린다.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표현 수위로 화제가 되었지만 <서브스탠스>는 놀라운 이야기의 힘으로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이제는 늙어버린 여배우가 화려했던 과거에 집착한 이야기는 빌리 와일더의 <선셋 대로> (1950), 조셉 마키위츠의 <이브의 모든 것> (1950) 등의 할리우드 고전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설정이다. 이러한 영화들에서 주인공, 즉 ‘늙은 여배우’는 과거의 망상에 사로 잡혀살거나, 현실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사회적 부적응자로 등장한다.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amp; 왓챠피디아
영화는 이 주인공들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과 자기 파괴적 행동으로 자신을 놓아버리는 방식을 강조함으로써 이들을 비판적이거나 동정 어린 주체로 그린다.

앞선 영화들이 젊음을 상실한 여성성을 괴물화 시키는 데 주력했다면 <서브스턴스>의 괴물, 혹은 원흉은 젊음(youth)이다. 영화는 탐욕의 주체로 변모해가는 '수'와 '엘리자베스'를 통해 젊음을 상품화하여 기생하는 산업과 그 관계자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는다.동시에 <서브스턴스>에서의 늙은 몸, 엘리자베스 역할을 선택하고 연기한 데미 무어의 용기는 극찬이 아깝지 않다. 이번 작품, <서브스턴스>는 수십년간 ‘성형의 아이콘’으로 각종 타블로이드에서 화제와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데미 무어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자아비판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과연 <서브스턴스>는 뛰어난 장르 영화임과 동시에 배우의 페르소나를 거울삼아 완성한 시대적 캐리커처로 부족함 없는 작품이다.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서브스턴스' 메인 예고편]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