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불법파업 지적하니 "내란 옹호하냐"는 노조

정권퇴진 앞세운 정치파업 강행
기업 "계엄 책임, 떠넘기나" 속앓이

곽용희 경제부 기자
“계엄령에 분노했고 탄핵에도 찬성하지만 회사가 왜 총파업의 피해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상급단체 지시에 따른 파업이어서 회사와는 협상의 여지도 없다고 합니다. 행여 불만을 드러냈다가 ‘내란 옹호 세력’이란 역풍을 맞을까 봐 함부로 말도 못 합니다.”

10일 만난 자동차 제조업체의 인사노무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국회의 대통령 탄핵 등으로 정국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일부 노조가 조합원들에게 파업 참여와 결근 후 집회 참여 등을 독려하면서 애먼 기업들만 속앓이하고 있다는 하소연이었다.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동조합은 10일 오후 2시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11일부터 돌입할 예정인 총파업의 세부 지침을 결의했다. 금속노조는 이미 지난 5일과 6일 산하 노조에 주야간 2시간씩의 파업을 지시해 현대자동차, 한국GM, 모비스 등 주요 사업장의 생산 라인이 중단됐다. 현대차 노조를 제외한 나머지 노조들은 11일 총파업 참여가 확실시된다.

간부들만 파업하는 형태로 금속노조의 지시를 따르던 기아 지부도 11일부터 생산라인을 중단하는 부분파업에 나선다. 지난달 현대트랜시스 파업으로 변속기 생산이 중단돼 최대 1조원대 손실을 본 지 채 한 달이 안 된 상황이다.

마트업계도 탄핵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피해가 커질까 전전긍긍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노조는 6일 ‘긴급 지침’을 내려 탄핵 표결일인 7일 국회 집결을 지시했다. 이를 위해 조합원에게 보건휴가(생리휴가) 사용, 근무 거부까지 독려해 논란이 됐다. 한 마트업계 관계자는 “토요일이 우리에겐 주 영업일”이라며 “직원이 대거 이탈하는 일은 아직 벌어지지 않았지만 주말마다 탄핵 안건이 올라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불안해했다.현행법상 파업을 하려면 노동위원회의 조정 절차를 거쳐 쟁의권을 확보해야 한다. 파업 목적도 ‘근로 조건 향상’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근로 조건에 이견이 없고, 쟁의권도 없는 상황에서 정권 퇴진을 앞세운다면 불법일 가능성이 크다.

금속노조는 5일 성명에서 “산업 기능을 멈추고 그 힘으로 정치적 요구를 관철하겠다”고 했다. 이번 파업이 정치 파업임을 자인했다. 이어 “파업의 정당성을 묻고 싶거든 불법 계엄의 정당성을 먼저 물으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 책임과 피해를 왜 대통령이 아니라 기업이 짊어져야 하는지는 의문스럽다. 가뜩이나 정치 불안이 초래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국민이 대신 치르는 상황에서 노사 대립 관계에 천착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은 아닌지 고심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