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위협 EU에 손내미는 英

브렉시트 4년 … 달라진 英

"불필요한 무역장벽 없애자"
유로존 국가들에 협력 제의
'트럼프 2기' 대비 태세 속도
6년만에 中과 경제회담 추진
레이철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이 유럽연합(EU) 재무장관들에게 경제협력을 확대할 것을 촉구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국가가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고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대응하자는 취지에서다. ‘브렉시트’로 갈라진 영국과 EU가 다시 밀착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EU와 관계 회복 나선 英

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리브스 장관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서 “영국과 EU의 더 긴밀한 경제 관계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며 “무역 장벽을 허물면 양측의 경제 성장 전망을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영국과 EU의 신뢰를 재구축하고 지난 몇 년간의 갈등 관계를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준비 작업을 하고 싶다”며 “우리는 이 관계에 마침표를 찍고 협력의 새 장을 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영국 재무장관의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 참석은 브렉시트 이후 처음이다. 영국은 2016년 국민투표를 거쳐 EU 탈퇴를 결정하고 2021년 1월 발효했다. 영국 총수출 중 EU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47.3%, 2020년 41.8%, 지난해 42%를 기록하며 큰 폭으로 하락했다.

지난 7월 집권한 키어 스타머 총리의 노동당 정부는 전임 보수당 정부와 달리 EU와의 관계 회복을 외교 정책의 핵심으로 설정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영국과 EU 간 협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날 영국은 EU와의 협상에서 원하는 구체적 사항에 대해 언급을 피했다. 리브스 장관은 유럽 단일시장이나 관세 동맹 재가입을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의식

리브스 장관이 EU에 손을 내민 이유는 트럼프 당선인 취임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새로운 무역 장벽을 세우는 것을 반대하자고 촉구했다. 트럼프 당선인과의 무역 전쟁에 관해서는 보호무역에 동참하지 말자는 뜻을 전하며 “자유무역을 포기하는 것은 심각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영국 내에서 리브스 장관 정책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보수당 소속 앤드루 그리피스 전 재무장관은 “리브스 장관은 성장이 둔화한 EU를 무시하고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타 트럼프 당선인과 무역 협정 체결을 논의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리브스 장관은 영국이 미국과 EU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재차 밝혔다. 이달 초 스타머 총리는 “(트럼프 당선인 취임 이후) 국익을 위해 우리는 미국, EU 모두와 협력해야 한다”고 언급했다.리브스 장관은 트럼프 당선인 취임 1주일 전인 다음달 중순 중국을 방문해 2019년을 끝으로 열리지 않고 있는 영·중 경제금융 대화를 재개할 예정이다. 이날 리브스 장관은 “모든 유럽 국가가 중국과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할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스카이뉴스는 “내년 1월 회담이 열리면 중국 전기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하는 미국과 EU의 조치를 영국이 따를지에 관심이 집중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