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통령도 집어삼킨 알고리즘

유창재 정치부장
섬뜩하면서도 어설펐던 12·3 비상계엄 사태의 전모가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1주일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도대체 왜”라는 질문에 누구도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말 2024년에 계엄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자신의 오판이 본인은 물론 나라 전체를 대위기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한 걸까. 추정 가능한 이유를 하나씩 배제하고 나면 답은 하나다. 이성적 판단이 결여된 상태. 윤석열 대통령은 무언가에 씌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엘리트 검사 출신 대통령을 기이한 심리 상태로 몰아간 건 믿음으로 변해버린 어떤 가설이다. 북한을 추종하는 반국가 세력이 여론 조작과 부정 선거를 통해 국회를 장악했고, 이들이 줄 탄핵과 입법 폭주로 국정을 마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없앤 더불어민주당이 대신 그 일을 맡은 경찰의 특수활동비마저 삭감하고, 검사는 물론 감사원장까지 탄핵하자 가설은 확신으로 변했다. 그 과정에서 유튜브 알고리즘이 확증편향을 강화했다는 게 현재로선 가장 합리적 추론이다.

확증편향의 방에 갇힌 대통령

대통령이 쓴소리를 하는 기성 언론 대신 극우 유튜브 채널을 즐겨 본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는 계엄 선포 담화문, 1980년대에나 어울릴 섬뜩한 문체의 계엄 포고령은 실제로 대통령이 알고리즘의 피해자로 전락했다는 걸 여과 없이 보여줬다. 극우 유튜버들이 ‘배신자’로 규정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반국가 세력으로 분류돼 체포 대상 정치인에 포함된 것도 같은 이유다.

윤 대통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극소수의 측근들과 이런 믿음을 공유하며 상호 증폭시켰다. 밤에는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극우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며 부정 선거론자의 세계관에 더욱 빠져들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내치는 불통 스타일은 그를 더욱 고립시켰다. 미디어 학자들은 이런 상태를 ‘에코체임버(echo chamber)’ 혹은 ‘필터버블(filter bubble)’이라고 부르며 일찌감치 그 위험성을 경고해 왔다. 에코체임버는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끼리 모여 자신들만의 신념을 강화하는 현상이다. 필터버블은 개인화된 검색과 추천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다른 견해에 노출되지 못한 채 지적으로 고립된 상태를 뜻한다.

계엄만큼 위험한 민주주의의 敵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필터버블에 대해 우려했다. 2017년 대통령 퇴임 연설에서 그는 “정치적 양극화와 개인화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우리는 점점 스스로의 버블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견해와 맞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있다”며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했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집어삼킨 알고리즘은 탄핵과 조기 대선 정국에서 양극화를 더욱더 부추기며 진화할 것이다. 혐오심을 먹고 사는 좌우 양극단의 정치 유튜버들에게 큰 장이 선 셈이다. 눈앞의 권력 투쟁에 급급한 정치인들은 이들 유튜버와의 공생을 택했다. 퇴행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팩트에 기반한 비판적 뉴스 소비를 훈련하는 ‘뉴스 리터러시’ 담론은 내전 상태인 이들에게 한가한 소리일 뿐이다. 6시간 만에 희극처럼 막을 내린 비상계엄령만큼이나 위험한 민주주의의 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