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보험사 CEO 총격 살해용의자 "기생충들, 당해도 싸다"

루이지 만조니/사진=REUTERS
미국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의 보험 부문 대표 브라이언 톰슨(50) 최고경영자(CEO)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루이지 만조니(26)가 체포 당시 소지한 선언문 내용이 공개됐다.

10일(현지시간) 뉴욕 경찰은 전날 오전 펜실베이니아주 알투나에서 만조니를 체포할 당시 그의 소지품에서는 세 쪽 분량의 손으로 직접 쓴 선언문이 발견했다고 발표했다.뉴욕타임스(NYT)는 경찰 내부 보고서를 인용해 이 선언문에 "솔직히 말해 이 기생충들은 당해도 싸다"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경찰 보고서는 만조니가 톰슨 CEO의 살해를 상징적인 제거이자 제약업계의 부패 및 '파워게임'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라고 여겼다고 평가했다. 제시카 티쉬 뉴욕경찰청장은 NBC 인터뷰에서 "세 쪽으로 된 선언문에는 반기업 정서와 건강보험 업계와 관련된 많은 문제 관련 내용이 담겼다"라며 "다만, 구체적인 범행 동기는 향후 몇주 또는 몇 달간 이뤄질 수사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공개한 루이지 만조니 머그샷/사진=REUTERS
조지프 케니 뉴욕경찰청 수사국장도 브리핑에서 만조니에 대해 "'코퍼레이트 아메리카'(Corporate America)에 악의를 품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코퍼레이트 아메리카는 미국의 대기업 또는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질서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된다.만조니는 선언문에서 자신이 단독으로 범행했다고 전하면서 "갈등과 트라우마를 일으킨 것을 사과한다"며 "하지만 그것은 해야만 했던 일이었다"고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만조니가 앞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기술문명을 반대하며 폭탄 테러를 일으킨 카진스키를 흠모하는 글을 올렸다는 사실도 로이터 통신을 통해 전해졌다. 만조니는 SNS에서 카진스키에 대해 "극단주의적 정치 혁명가"라며 그의 선언문 산업사회와 미래를 두고 "선견지명이 있다"고 칭송했다.

카진스키는 미국에서 '유나바머'(Unabomber)란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로 1978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의 대학과 항공사 등에 소포로 사제폭탄을 보내 3명을 숨지게 했다. 16세 때 하버드대 수학과에 입학하고 24세 때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최연수 수학 교수로 임명된 천재였지만, 2년 만에 사표를 내고 몬태나주 숲속 오두막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검거 직전 각 언론사에 '산업사회와 미래'에서 기술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인류에 재앙이 될 것이라며 혁명을 통해 산업사회를 전복해야 한다는 극단주의적 주장을 펼치는 선언문을 보냈고, 이후 가족의 제보로 붙잡혔다. 지난해 6월 옥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만조니는 지난 4일 오전 6시 44분께 뉴욕 미드타운의 힐튼호텔 입구 인도에서 검은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소음기가 달린 권총으로 미국 최대 의료서비스 기업 유나이티드헬스케어의 최고경영자(CEO) 브라이언 톰슨(50)을 살해한 뒤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만조니는 20피트 떨어진 곳에서 여러발을 발사했고, 톰슨은 가슴에 총상을 입었다.

사건 현장에는 9㎜ 실탄 3발과 9㎜ 탄피 3개, 휴대전화가 발견됐는데, 탄피에 적힌 단어는 변호사와 보험산업 비판가들이 청구금 보험금 지급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술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문구인 '지연, 거부, 방어'를 반영했다는 해석이다. '지연, 거부, 방어'는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지연하고 청구를 거부한 다음 자신들의 행동을 방어한다는 의미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에 찍힌 만조니의 얼굴을 공개하고 현상수배에 나섰으나 그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NYT는 톰슨 사망 사건은 환자들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기쁨을 불러일으켰다며 그들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건강보험 회사와 부정적인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CNN이 온라인에 게시한 총격 사건 영상 아래에는 "가족에게 보내는 생각과 공제금"이라는 댓글도 달렸다.

유나이티드헬스케어 같은 건강 보험사는 진료 접근성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의사와 환자로부터 자주 비난받았다. 이를 통해 보험사들은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는다는 것.

실제로 미국 명문 볼티모어의 한 사립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컴퓨터공학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한 엘리트로 알려진 만조니는 수년간 허리 통증으로 고통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5일간 경찰 추적을 따돌렸던 만조니의 도주극은 9일 오전 9시 15분께 만조니의 얼굴을 알아본 맥도널드 매장 직원의 신고로 꼬리가 잡혔다. 펜실베이니아주 경찰은 불법 총기소지와 위조 신분증 제시 등 혐의로 만조니를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뉴욕 경찰도 2급 살인 혐의와 불법 총기소지 등 혐의로 그를 입건하고 펜실베이니아주에 신병 인도를 요청했다.다만 만조니가 뉴욕주로의 신병 인도를 거부함에 따라 실제 인도까지는 시일이 소요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만조니는 이날 범죄인 인도 심문이 열린 펜실베이니아주 블레어카운티 법원에 도착한 뒤 기자들을 향해 "완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데다 미국 국민의 지성에 대한 모욕이다"라고 외쳤다고 NBC뉴스는 전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