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오래 사랑받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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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 영화평론가·前 숙명여대 교수주변에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는 가족이 늘고 있다. 실제 장애인 중 유독 발달장애 환자만 급격하게 늘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애인 현황’을 보면 발달장애인은 지난 9년간 33.67%나 폭증했다.
발달장애 아들을 둔 엄마의 상황과 심경을 그린 이상철 감독의 영화 ‘그녀에게’는 10년째 장애 아이 엄마로 사는 기자 류승연의 경험담을 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이라는 책을 원작으로 한다. 주인공인 정치부 기자 유상연(김재화 분)은 올해의 기자상을 받은 능력 있는 기자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정치인들을 능숙하게 다루며 정책 방향도 바꾼다. “이제 꾼이 다 됐네”라고 하면서 정치할 마음 없냐고 국회의원이 묻는다. “무슨 말씀이세요, 의원님. 권력은 갖는 것보다는 까는 맛이죠”라며 발랄하게 되받아치기도 한다.40대 정치부장, 50대 편집국장을 꿈꾸며 탄탄대로를 걸어온 유 기자는 간절히 바라던 임신으로 쌍둥이를 낳았지만 조산으로 30분 먼저 태어난 누나 지수(이하린 분)와 달리 동생 지우(빈주원 분)는 어릴 때부터 발달장애로 자란다. 자폐성 지적 장애 2등급을 받은 지우를 키우는 과정에서 부조리한 장애등급제도의 맹점과 싸워야 했다. 복지제도는 막상 지우에게는 적용되기 어렵다.
가족들의 피해도 만만찮다. 동생 중심의 생활에서 항상 순위가 밀리는 비장애인 지수는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물 붓듯이 교육비가 들어가야 그나마 조금 나아질 수 있는 장애 아들을 위해 남편 진명(성도현 분)의 과로와 피로는 점차 쌓여만 간다. 장애 아이 탓에 불편하다며 같은 반 학부모들은 퇴학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내겠다고 압박한다. 담임 선생님까지 “통합교육이 지우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특수학교로의 전학을 권유한다.
그는 기자 정신으로 ‘장애인 차별과 통합교육의 실패’를 주제로 기고도 하고, 발달장애인 복지제도의 불합리성을 외치는 사람들과 함께 손팻말을 들고 국회 앞에서 시위하기도 한다. 그는 발달장애 부모를 위한 상담 교육에서 ‘오래 사랑받는 사람이 장애인(長愛人)’이라는 말을 듣고 큰 위로를 받는다. 어느 날 혼자 칫솔질하는 지우를 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발달장애 엄마가 된 후배 기자에게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는 데 필요한 조언을 건넬 정도로 성장한다.
이 영화에서 리얼하게 재현되는 발달장애 관련 복지제도의 비합리성과 부조리를 접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국가 제도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혼자서는 문제 해결이 어려운 이들이다. 행정편의주의 운영을 넘어서서 천차만별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개인맞춤형 제도 개선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