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덮친 '에그플레이션'…물가 경고등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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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값, 역대 최고가 넘을 듯12일(현지시간) 오후 3시께 찾은 미국 뉴저지 북부 버건카운티의 한 대형 마트. 영업 종료까지 5시간 이상 남았지만 이미 달걀 매대 곳곳이 비어 있었다. 한 판(12개입)당 5달러 이하인 비교적 저렴한 제품부터 판매되는 바람에 7달러 이상짜리 상품만 남아서다. 마트 관계자는 “달걀 가격이 계속 오르면서 비교적 가격이 싼 제품은 이전보다 재고가 빨리 소진된다”며 “저렴한 제품은 다른 동네 마트도 확보하기 어럽다”고 말했다.
한판 3.65弗…작년보다 70%↑
조류인플루엔자로 공급 차질
연말 연휴시즌 맞아 수요 늘어
소비자들, 저가 달걀만 싹쓸이
같은 날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있는 대형 마트 세이프웨이 달걀 매대에는 ‘달걀의 제한적 수급 상황으로 한 사람당 달걀 두 판으로 판매를 제한한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매장 직원은 “닭이 파업이라도 한 것 같다”고 했다.
○ 비어가는 달걀 매대
세계인의 인기 식재료인 달걀 가격이 누적된 공급 차질로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호주 맥도날드에서 맥모닝 판매가 일시 중단됐고 미국 일부 마트에서는 달걀 매대가 비어버렸다.미국에서는 달걀 가격 상승세가 계속되며 2년 만에 다시 최고가를 경신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공급 제한과 수요 증가가 맞물리며 달걀 공급업체 주가는 급등했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지난달 A등급 대형 달걀(12개입) 가격은 3.65달러로 전월보다 8.3%, 1년 전 동기(2.14달러) 대비 70.5% 올랐다. 도매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54.6% 급등한 것으로 조사됐다.미국 소비자는 이미 한 차례 달걀 가격 급등에 따른 피로를 느꼈다.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며 2023년 1월 대형 A등급 달걀 가격은 전년 동기(1.93달러) 대비 2.5배 오른 4.82달러로 정점을 찍었다. 2019년 연평균 달걀 가격이 1.4달러대인 점을 고려하면 3년여 만에 세 배 뛴 것이다. 당시 여러 식재료 중 달걀 상승 폭이 압도적으로 컸다. 2022년 연간 달걀값 상승률은 60%에 달했다. CNBC는 “(최근 달걀 가격 급등은) 식료품 쇼핑객에게는 ‘데자뷔’ 같은 현상”이라고 보도했다.
○ AI 파동 속에 수요는 증가
달걀 가격 급등의 주원인으로는 조류인플루엔자(AI)에 따른 공급 감소가 꼽힌다. 2021년 말 미국에 퍼진 AI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감염 속도와 전파 속도가 빨라 양계업계에 치명적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올해 산란계 약 3300만 마리가 AI 때문에 살처분됐다. 특히 그중 절반이 10월 15일 이후 살처분돼 달걀 도매가격이 10월 중순 이후 97% 급등했다고 농업시장 조사회사 엑스파나는 분석했다.수요 측면에서는 계절적 요인이 크다. 추수감사절부터 시작된 연말 연휴 시즌에는 수요가 일시적으로 증가한다. 라이언 호즈노프스키 엑스파나 분석가는 “4분기는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 연휴 동안 소비자의 제과제빵 수요가 늘어나는 시기여서 달걀 수요가 가장 강하다”고 설명했다. 달걀 유통업체 에그스언리미티드의 브라이언 모스코기우리 부사장은 “달걀 가격이 기록적 수준에 근접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CNBC에 전했다.
○ 다른 식재료로 대체 어려워
2019년 발표된 미국 농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은 1인당 연간 달걀 약 279개를 섭취한다. 대중적인 식재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달걀 공급업체는 주가 급등에 웃고 있다. 미국에서 공급되는 달걀 10개 중 1개를 생산하는 미국 최대 달걀 공급회사 칼메인푸즈 주가는 12일 기준 최근 1년간 116.59% 급등했다. 또 다른 달걀 공급업체 바이털팜스는 같은 기간 145.62% 치솟았다.업계 관계자들은 달걀 가격이 치솟는 ‘에그플레이션’(에그+인플레이션)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농무부는 최근 “내년에도 미국 내 달걀 생산량이 예상보다 적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달걀은 여전히 동물 단백질 중 비교적 저렴한 공급원이자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식재료”라며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수요는 견조한 경향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박신영/실리콘밸리=송영찬/한경제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