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 츠베덴 "음악에서만 엄격…그저 그런 변화 용납 못해"

인터뷰 -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

뉴욕 필·홍콩 필 이끈 '지휘 거장'
2026 라디오 프랑스 필 감독 취임

"뉴욕 필 시간, 날 강하게 만들어
화려한 명성보단 눈앞 무대 전념"
네덜란드 출신 지휘 거장 얍 판 츠베덴은 최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한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서울시향은 성장 가능성이 무한한 오케스트라”라고 말했다. 문덕관 사진작가
“제 스코어(모든 악기의 악보가 합쳐진 총보)에선 이전의 생각을 약간 바꾸는 식의 아이디어는 용납하지 않아요. 차라리 모조리 지워버리죠.”

‘오케스트라 조련사’로 불리는 네덜란드 출신 지휘 거장 얍 판 츠베덴(64)은 최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나의 악보엔 모든 아이디어가 날짜와 함께 적혀 있는데, 이는 같은 작품을 수십 번 연주하더라도 안주하지 않고 매번 다른 음악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의 흔적”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레너드 번스타인, 주빈 메타, 로린 마젤 같은 전설적 지휘자들이 이끌어온 미국 최정상급 악단인 뉴욕 필하모닉에서 26대 음악감독(2018~2024년)을 지낸 거장이자, 2019년 세계적 권위의 그라모폰 뮤직 어워즈에서 홍콩 필하모닉을 아시아 악단 최초로 ‘올해의 오케스트라’에 선정되도록 이끈 명장이다.

올해 1월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 취임해 5년의 임기를 시작한 츠베덴은 내년부터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숨 가쁜 행보를 이어간다. 유럽 명문 악단인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차기 음악감독으로 선임됐기 때문이다.

세계를 넘나드는 마에스트로

▷서울시향 음악감독 자리에 오른 지 약 1년이 흘렀습니다.

“새롭게 알게 된 건 단원들 사이에 형성된 연대감이 그 어떤 세계적 오케스트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대단한 강점으로, 성장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시점에서 서울시향에 가장 바라는 점은 무엇입니까.“여러 가지 연주 방법, 표현 방식을 처절하게 고민하고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길 원합니다. 예술에서 중요한 건 늘 재료 자체보다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에 담겨 있으니까요.”

▷2026년 라디오 프랑스 필 음악감독 취임을 앞두고 있습니다.

“현대음악을 깊이 연구하는 악단이기에 더욱 기대가 큽니다. 이 악단은 제가 새로운 음악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끌고, 낯선 작품들을 파고드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몰두하도록 유도할 것입니다. 제겐 조화롭게 음악 세계를 넓힐 기회가 주어지는 것과 다름없죠.(웃음)”▷단원들을 혹독하게 훈련하는 리더로 유명한데, ‘엄격한 지휘자’란 평에 동의합니까.

“솔직히 말하면 전 사람들에게 그렇게 엄격하지 않아요. 오로지 음악 앞에서만 엄격하죠. 믿기 힘들 수 있지만 진짜예요(웃음).”

번스타인 “넌 포디엄 위해 태어난 사람”

츠베덴은 열아홉 살 때 네덜란드 명문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의 최연소 악장으로 임명된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이다. RCO 악장 재임(1979~1995년) 중이던 1990년 베를린 공연 리허설에서 처음 지휘봉을 들며 마에스트로의 꿈을 키웠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불멸의 거장’ 레너드 번스타인의 권유 때문이었다.

▷번스타인이 당신에게 포디엄에 오르라고 말한 그날을 기억합니까.

“그럼요. 제가 지휘를 마치자 그는 ‘(포디엄에 오르라고 한) 나의 결정은 매우 나빴어’라고 말했지만, 곧이어 이런 얘기를 덧붙였습니다. ‘(이 시간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해. 나는 네가 진실로 포디엄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이라고요. 그의 말 때문에 지휘자로서 공부가 절실히 필요하단 걸 느꼈고, 이후 제 모든 게 바뀌었죠.”

▷지금까지 마음에 새기고 있는 번스타인의 가르침이 있습니까.

“그는 매일 밤 더 훌륭한 음악을 선보이기 위해 도전적인 사고를 멈추지 않았고, 연주 도중에라도 더 좋은 방향의 해석이나 표현이 떠오르면 두려움 없이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단, 감정에 앞서서 스코어에 적힌 지시를 무너뜨리는 실책을 범하진 않았죠.”

▷뉴욕 필에서 보낸 시간이 당신에겐 어떤 의미였습니까.

“뉴욕 필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악단 중 하나이기에 매 공연 사람이 몰려들었고,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제 모든 것이 매일 노출됐죠. 매우 큰 노력이 필요한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지독히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지휘자로서 절 아주 강하게 만들어준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입니까.

“제게 중요한 건 ‘클래식 음악의 황제’ 같은 화려한 수식어로 칭송받는 일이 아닙니다. 미래의 명성보단 당장 오늘 더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음악으로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하면서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지휘자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고 싶습니다. 전 ‘천국으로 가는 길이 천국 그 자체보다 더 아름답다’는 말을 믿거든요(웃음).”김수현 기자

※얍 판 츠베덴 인터뷰 기사 전문은 다음달 2일 발간되는 아르떼 매거진 8호(2025년 1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