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규제 예외' 반도체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

한경 CHO Insight
필자는 2024년도 첫 CHO Insight 기고에서 근로시간 규제에 관한 대법원 판결을 소개(9to6 샐러리맨과는 아무 상관없는 '대법 연장근로 판결')하면서 우리나라가 한번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근로시간 규제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2018년 7월 근로시간 총량을 규제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됨에 따라 주52시간제가 도입되었는데, 법정근로시간 주 40시간에 더하여 연장·야간·휴일근로시간을 포함하는 1주일 동안의 총근로시간이 52시간이 넘지 않도록 규제하는 것이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법정 근로시간으로 하되, 당사자 사이에 합의를 하면 최대 주당 12시간의 연장근로를 가능하게 하면서 이를 초과하는 경우 기업의 대표이사를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규제이다.

대법원은 작년말 연장근로시간이 1주간 12시간을 초과하는지 여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였는데, 1주간의 근로시간 중 40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시간을 1주 단위로 합산한 값이 12시간을 초과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한 것이다. 즉, 하루 8시간을 초과한 시간의 합이 12시간을 넘더라도 주당 40시간을 초과한 시간이 12시간을 넘지 않으면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사실 근로기준법이 수당 지급에 대한 규제와 근로시간 자체에 대한 규제를 구분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대법원은 법문을 충실히 해석하여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이러한 대법원 판결을 두고 이틀 연속 밤샘 근무를 시킬 수 있게 되었다거나, 주52시간제가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등의 무리한 견해가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은 지난 1년간 실증되었다. 오히려 대법원은 현행 근로기준법상 당사자가 합의하더라도 원칙적으로 1주간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를 하게 할 수 없고, 이를 위반한 자를 처벌하게 함으로써 근로기준법이 1주간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 그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이와 같은 현행 근로기준법에 대한 대법원의 해석을 고려하면, 획일적인 근로시간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거나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특별법 입법이 불가피해 보인다.실제로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법안이 있는데,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이하 '반도체 특별법')이다. 반도체 특별법은 기업에 대한 직접 보조금 지원의 법률상 근거를 마련하고, 주 52시간 규제 적용 예외의 근거를 둠으로써 정부의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 및 연구개발(R&D) 핵심 인력의 집중근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법률이다. 여당이 당론으로 지정하고 여야 모두 특별법 처리 필요성에 일부 공감대를 이뤘으나 주 52시간 규제 예외 규정에서 여야 시각 차가 이어지다 통과가 미뤄졌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R&D 핵심 엔지니어는 6개월에서 1년간 연속 집중근무가 필요하다고 한다. 통상 2년 정도 소요되는 신제품 개발시 시제품이 나오면 6개월에서 1년간 사무실과 실험실을 오가며 성능검증이 필요하고, 예기치 못한 변수 대응을 위해 다른 인력으로 대체가 불가능한 핵심 R&D 인력은 어느정도 밤샘 근무도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차세대 DRAM 개발과정에서 개발인력들이 근로시간 한도에 도달해 사업장 출입이 차단되면서 개발이 18개월 가량 지연된 사례가 있고, 현행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주 평균 52시간의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므로, 9주간 집중근무를 한 후 이후 3주간 출근이 불가능해져 프로젝트가 단절된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에 따른 특별연장근로 역시 1회당 3개월에 불과한 점, 현실적으로 재인가가 어려운 점, 64시간이라는 규제가 여전히 발목을 잡는 점을 고려하면 대안이 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문제는 실제로 업계의 실적으로도 나타났다. 근로시간의 규제가 강화된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이전에는 제품개발 목표를 20% 초과 달성하여 업계는 물론 우리나라의 성장을 견인하였으나, 현재 납기지연이 30%에 이르는 상황이라고 한다. 또한 발열문제 발생시 TSMC는 단 두 달 만에 해결하였으나, 우리는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리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한다. 이른바 ‘초격차’가 무너진 것이다.반도체 산업은 국내시장에서 국내 플레이어들 간의 경쟁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들이 소재하는 미국, 일본, 대만 등의 근로시간 규제를 보면 우리만 손발을 묶어 놓은 형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연장 근로시간 한도가 없고, 당사자 합의로 필요한 만큼 근로하며, 법정 근로시간(주40시간) 이상 근무시 초과수당을 지급한다. 일본 역시 연구개발 인력에 대해서는 연장근로의 한도가 없고, 다만 건강을 고려하여 건강검진 실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대만은 주 40시간 근로를 기본으로 하루 4시간, 월 54시간 연장근로가 가능하나 위반시 처벌강도가 낮은 수준이어서 사실상 규제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이러한 사정들을 고려하여 정부와 여당은 반도체 업계의 연구개발 인력의 근무 시간 제한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특정 업종에만 예외를 두긴 어렵다고 한다. 모든 업종의 규제를 없애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규제 완화가 가장 시급한 반도체 업계라도 근로시간 규제를 완화해 보자는 것인데 특정 업종에만 예외를 두기 어렵다는 주장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이 지금 당장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다른 업계의 비슷한 요구가 있으면 검토하고, 더 나아가 근로시간을 다른 방법으로 규제하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근로기준법 개정을 검토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주 52시간 규제 예외를 적용함에 있어 오용 내지 남용이 우려되나, 이는 법률상 연구개발 인력의 정의를 분명히 하고, 현행 근로기준법 체계에 맞는 적법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하며, 건강관리 및 유지에 관한 규제를 별도로 둠으로써 충분히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연초에도 언급하였듯이 우리나라처럼 내수시장이 작고 자원이 빈약한 나라가 국가적인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개방이 필수적이고, 개방 후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는 일하는 사람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사람들만으로는 이러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더 일찍 출근하고, 누군가는 남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일을 하며, 누군가는 조금 더 오래 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반도체 특별법은 조금 더 오래 일하는 것을 적법하게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을 하는 것이고 글로벌 단위의 경쟁시장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를 철폐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으므로 새해에 조속한 통과를 기대한다.

조홍선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