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사흘 가는 열정 없다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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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을 읽다 밤을 새웠다. 동이 틀 무렵에 홀연 잠이 들었다. 안절부절못한 어머니는 “아버지 아시면 큰일 난다”라며 흔들어 깨웠다. 초등학교 다닐 때다. 평소처럼 학교에 다녀온 나를 아버지가 불러 대뜸 “괜찮다”라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해라.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하고 싶을 때는 밤을 새워서라도 해라. 창의성은 거기서 나온다. 하기 싫어 마지못해 한 일에서 창의성은 나오지 않는다”라고 했다. 밤을 새운 행위보다 한 가지 일에 깊이 빠져들 수 있는 자식의 집중력과 몰입력을 높게 평가했다. 공부나 창의적인 활동 등 다른 분야에서 중요한 자질이 있다고 해석했다.

집에 온 손님들에게 “우리 집 큰 애가 공부하느라 밤을 새웠다”라며 자랑했다. 아버지는 만화 본 일을 공부하느라 밤새웠다고 덮어 내게 부끄러움을 안겼다. “호기심과 탐구심이 남달라요. 아이가 스스로 시간을 계획하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니 자율성과 책임감이 있어요”라고 심하게 한 자식 자랑을 옆방에서 들었던 기억은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깊이 파고드는 능력은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을 거둘 힘”이라는 말로 자랑을 끝낸 아버지는 나를 불러 손님에게 인사시켰다.손님이 간 뒤 아버지는 “잠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활동이다. 인간이 잠을 자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기간은 7일 정도다. 그러나 하루 안 자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다른 일을 망친다. 이틀 못 자면 기억력이 손상된다”라고 했다. “사흘 안 자면 뇌가 손상돼 정신 건강에 치명적이다”라며 함부로 밤새는 일을 경계했다. 이어 “너는 밤을 샌 소중한 경험을 했다. 가치 있는 일을 했다. 가치는 값어치다. 돈으로는 살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만화책을 읽으려고 잠을 안 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일러줬다.

직장에 들어가서 매일같이 야근하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계속되자 몹시 걱정한 어머니가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옷 갈아입으러 아침에 집에 들르자 아버지가 불러세웠다. 초등학교 때 밤샌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는 밤새우지 말라고 했으나, “밤새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 그렇게 해야 할 일이면 해라. 밤새워서 할 일도 살다 보면 그리 많지 않다. 잠은 어느 때고 잘 수 있지만, 일은 다 때가 있다”고 격려했다. “열정 없이 밤새기 어렵고 열정 없이 성취되는 일도 없다”라고 했다. 이어 “열정도 식는다. 사흘 가는 열정 없다”고 단정한 아버지는 열정을 지속할 수 있게 마음을 다잡기를 강조했다.

이때 아버지가 인용한 고사성어가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일시적인 느낌으로 먹은 마음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기는 했지만, 사흘만 지나면 그 결심이 흐지부지되고 만다는 뜻으로 쓰인다. ≪맹자(孟子)≫ 등문공(騰文公) 호변장(好辯章)에 나온다. “그 마음에 일어나서[作於其心] 그 일을 해치고, 그 일에 일어나서 그 정치를 해친다.” 작심이란 마음을 일으킨다는 말이다. 억지로 하기 싫은 것을 의식적으로 일깨운다는 뜻이다.이번에 다시 찾아보니 작심삼일 사자성어는 우리나라 고사성어다. ‘고려의 공무는 사흘밖에 못 간다’는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에서 유래했다. 태종실록에 실려있다. 고려 말 사회 혼란이 극심해져 정책이 일관성을 잃고 시행과 폐지를 반복했다. 세종대왕도 “처음에는 부지런하지만 결국 게을러지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의 고질병이다. 고려공사삼일이라는 속담은 빈말이 아니다”라고 했다. 작심삼일은 작심과 삼일이 합해진 말이다. 우암 송시열이 손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네가 책을 열심히 읽는다니 참 기쁘다. 그렇지만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해라”라는 구절에 비로소 완성체가 나온다.

왜 하필 삼일일까? 힘든 일을 시작할 때는 세로토닌이 나와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세로토닌 분비는 72시간가량만 지속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 세로토닌 작용이 끝나 목표가 더욱 힘들게 느껴지고 포기하고 싶어지게 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강한 동기부여로 자극을 받아 냄비처럼 끓어오른 흥분과 의지력으로 하루 이틀은 버틸 수 있다. 그러나 학자들은 ‘사흘 지나면 흥분이 식으면서 동력이 떨어져 원래대로 되돌아간다’며 의지력 소진(Ego Depletion)으로 이름 붙였다.

말을 끝내면서 아버지는 “목표가 희미해지거나 노력에 비해 성과가 나오지 않아 좌절감을 느끼면 열정은 바로 식는다. 체력이나 정신력이 떨어지는 이유도 크다. 그보다는 실패의 두려움이 크거나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면 열정은 급격히 떨어진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열정을 지속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습관이다. 두 달이면 습관 든다. 두 달 버틸 열정을 꾸준히 가꾸라”고 일러줬다. 연구에 따르면 습관이 형성되기까지 평균 66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 이전 단계에서 열정이 식어버린다면 습관으로 자리 잡기가 당연히 어렵다. 항상성이 있는 우리 몸은 경로의존성을 유지하려는 습성이 있다. 이전의 습관을 바꾸자면 큰 노력이 필요하다. 새 습관이 싹트는 ‘마의 삼일’을 이겨내 새로운 경로를 각인시켜야 한다. 밤새는 열정이 필요한 이유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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