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교육 프로그램 참가후 의식화...안기부가 밝힌 서의원 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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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원의원이 농민운동에 대한 의식을 갖기시작한 것은 그가 35세되던
지난 72년 고려대부설 노동문제연구소에서 개최한 농민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부터인 것으로 밝혀졌다.
** 목수의 외아들로 태어나 불우한 환경속 성장 **
17일 안기부가 발표한 서의원의 생장과정과 전력에 따르면 서씨는 지난
37년 7월 전북 순창에서 목수의 외아들로 태어나 10살때 아버지 서재선씨
(56년 사망)가 전남 곡성의 기독교수도원인 "동광원"에 잡부로 취업하자
가족과 함께 이곳에 들어가 20세가 될때까지 "광주동광원 함평분원"등을
전전하며 불우하게 성장했다.
그는 20세가 되던 56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가족과 함께 전남 곡성을
거쳐 함평에 정착, 농업에 종사하면서 "4H운동"에 참여, 활동하다 72년
고려대부설 노동문제연구소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그는 본격적인 농민운동을 전개하기위해 73년 당시 농민운동단체중
가장 조직적으로 투쟁하던 "가톨릭농민회" 함평분회 회원으로 가입,
"가농"전남연합회 총무및 회장(74.5-81.12), 가농 전국연합회 부회장및
회장(82.1-88.1)으로 활동해오면서 78년4월 함평고구마사건, 79년9월
오원춘사건을 비롯 "농축산물 수입개방저지", "농가부채 탕감"등을 이슈로
한 농민시위에 적극 가담하거나 이를 주도함으로써 농민운동을 대중정치
투쟁으로 조직화하고 현장활동가 양성을 위해 의식화교육을 실시하는등
극렬한 농민투쟁 전개에 앞장 서 왔다.
** 여의도 농민시위 적극 가담 **
지난 85년4월 북한공작조직에 포섭된 이후에는 "민통련". "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등 각종재야단체에 농민대표로 참가, 활동하다가 지난해
2월 재야농민운동단체 대표로 평민당에 입당, 제 13대 총선시 전남함평,
/영광지역구에서 출마/당선된후 남북 종자교류/가축교류등을 제안하기도
했으며 특히 지난해 11월 여의도 농축산물/수입저지 시위"등 농민운동에
적극 가담햇다.
한편, 서의원은 12세 연하인 처 임선순씨와 결혼, 3남1녀를 두고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에서 보증금, 500만원, 월세 20만원의 전세방에서
생활하면서도 남편과 별거중인 유부녀인 고금숙(38.무직)과 지난해 10월
초부터 내연의 관계를 유지하며 매월 4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해왔다.
** 괴팍스러운 행동으로 주위의 시선 끌어 **
서씨는 기벽과 특이한 행동으로 주위의 시선을 끌어왔는데 예를 들면
국회개원시 한복 두루마기와 고무신 차림으로 등원하는가 하면 개원직후
의원회관 사무실에 기거하면서 라면을 끓여먹으며 처와 함께 침식을 하기도
했다.
** 김대중총재 유럽순방시 비행기내서 맨발로 다녀 **
또 지난 2월 김대중평민당 총재의 유럽순방 수행시 비행기내에서 맨발로
바지를 걷은채 활보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서씨는 이밖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된이후 지역구민의 취직 또는 사업청탁을
해결해준 대가로 7회에 걸쳐 2,400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도 받고있다.
** 각종 시위등 주동 3차례 재판 받아 **
한편 서씨는 78년 5월 29일 광주 가톨릭센터에서 "가톨릭간부 구속에 관한
경과"제하의 유인물 60여매를 배포해 광주경찰서에 의해 불구속입건, 같은해
11월30일 유언비어 유포및 집시법위반으로 기소유처분을 받았으며 79년9월
10일 천주교사제단및 정의평화위원회 주관으로 전주 전동성당에서 열린
"교권수호및 인권을 위한 기도회"종료후 오원춘씨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주동하면서 전동 동사무소출입문을 파손하고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입건,
징역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었다.
그는 또 지난80년 10월 전투병과교육사령부 보통군법회의에서 내란선동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같은해 11월 징역 3년으로 감형, 광주교도소에서 복역중
형집행 면제로 출소한 전력도 갖고 있다.
서씨는 지난 85년2월 아이보리코스트에서 개최된 MIJARC(국제가톨릭 농촌
청년회)총회에 참석하고 86년2월 프랑스에서 개최된 "제3세계 식량문제
세미나와 일본의 "식량자급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가하는등 4차례에
해외여행을 다녔다.
지난 72년 고려대부설 노동문제연구소에서 개최한 농민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부터인 것으로 밝혀졌다.
** 목수의 외아들로 태어나 불우한 환경속 성장 **
17일 안기부가 발표한 서의원의 생장과정과 전력에 따르면 서씨는 지난
37년 7월 전북 순창에서 목수의 외아들로 태어나 10살때 아버지 서재선씨
(56년 사망)가 전남 곡성의 기독교수도원인 "동광원"에 잡부로 취업하자
가족과 함께 이곳에 들어가 20세가 될때까지 "광주동광원 함평분원"등을
전전하며 불우하게 성장했다.
그는 20세가 되던 56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가족과 함께 전남 곡성을
거쳐 함평에 정착, 농업에 종사하면서 "4H운동"에 참여, 활동하다 72년
고려대부설 노동문제연구소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그는 본격적인 농민운동을 전개하기위해 73년 당시 농민운동단체중
가장 조직적으로 투쟁하던 "가톨릭농민회" 함평분회 회원으로 가입,
"가농"전남연합회 총무및 회장(74.5-81.12), 가농 전국연합회 부회장및
회장(82.1-88.1)으로 활동해오면서 78년4월 함평고구마사건, 79년9월
오원춘사건을 비롯 "농축산물 수입개방저지", "농가부채 탕감"등을 이슈로
한 농민시위에 적극 가담하거나 이를 주도함으로써 농민운동을 대중정치
투쟁으로 조직화하고 현장활동가 양성을 위해 의식화교육을 실시하는등
극렬한 농민투쟁 전개에 앞장 서 왔다.
** 여의도 농민시위 적극 가담 **
지난 85년4월 북한공작조직에 포섭된 이후에는 "민통련". "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등 각종재야단체에 농민대표로 참가, 활동하다가 지난해
2월 재야농민운동단체 대표로 평민당에 입당, 제 13대 총선시 전남함평,
/영광지역구에서 출마/당선된후 남북 종자교류/가축교류등을 제안하기도
했으며 특히 지난해 11월 여의도 농축산물/수입저지 시위"등 농민운동에
적극 가담햇다.
한편, 서의원은 12세 연하인 처 임선순씨와 결혼, 3남1녀를 두고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에서 보증금, 500만원, 월세 20만원의 전세방에서
생활하면서도 남편과 별거중인 유부녀인 고금숙(38.무직)과 지난해 10월
초부터 내연의 관계를 유지하며 매월 4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해왔다.
** 괴팍스러운 행동으로 주위의 시선 끌어 **
서씨는 기벽과 특이한 행동으로 주위의 시선을 끌어왔는데 예를 들면
국회개원시 한복 두루마기와 고무신 차림으로 등원하는가 하면 개원직후
의원회관 사무실에 기거하면서 라면을 끓여먹으며 처와 함께 침식을 하기도
했다.
** 김대중총재 유럽순방시 비행기내서 맨발로 다녀 **
또 지난 2월 김대중평민당 총재의 유럽순방 수행시 비행기내에서 맨발로
바지를 걷은채 활보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서씨는 이밖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된이후 지역구민의 취직 또는 사업청탁을
해결해준 대가로 7회에 걸쳐 2,400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도 받고있다.
** 각종 시위등 주동 3차례 재판 받아 **
한편 서씨는 78년 5월 29일 광주 가톨릭센터에서 "가톨릭간부 구속에 관한
경과"제하의 유인물 60여매를 배포해 광주경찰서에 의해 불구속입건, 같은해
11월30일 유언비어 유포및 집시법위반으로 기소유처분을 받았으며 79년9월
10일 천주교사제단및 정의평화위원회 주관으로 전주 전동성당에서 열린
"교권수호및 인권을 위한 기도회"종료후 오원춘씨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주동하면서 전동 동사무소출입문을 파손하고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입건,
징역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었다.
그는 또 지난80년 10월 전투병과교육사령부 보통군법회의에서 내란선동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같은해 11월 징역 3년으로 감형, 광주교도소에서 복역중
형집행 면제로 출소한 전력도 갖고 있다.
서씨는 지난 85년2월 아이보리코스트에서 개최된 MIJARC(국제가톨릭 농촌
청년회)총회에 참석하고 86년2월 프랑스에서 개최된 "제3세계 식량문제
세미나와 일본의 "식량자급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가하는등 4차례에
해외여행을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