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원의원 간첩사건 수사결과...(5)...안 기 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 연락 및 접선 음어조직 **
<>서경원의 북한 체류기간중 그를 안내한 바 있는 공작지도원 "60대 김모",
"40대 김모"는 "이제는 평양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므로 앞으로는 서독의
성낙영과는 일체 연락을 끊고 덴마크 코펜하겐의 북한대사관과 직접
연락하라"고 지시한 다음, 85.4이후 사용해온 "위장약(자금), 위장약1알
(1,000달러), 정신부(북한공작지도원 정모)등의 음어를 폐기하고 새로운
"연락및 접선음어조직"을 약정하였음.
<>통신연락은 "덴마크 코펜하겐 소재 북한대사관 전화번호 0045-1623927번의
이선생"을 통해 북한과 직접 연결되는 선을 유지하고
<>연락시 보안유지를 위해 "음어조직"을
- 서의원 -> 원박사
- 북한대사관 직원 -> 이선생
- 미화 1,000달러 -> 성경책 1권
- 김수환 추기경 -> 어른
- 추기경 방북추진상황 -> 성가대 연습
- 방북 -> 고향방문
- 시국이 안좋다 -> 머리가 아프다등과 같이 약정하였으며
<>"접선조직"으로
- 북한 공작지도원이 평양에서 오는 시간을 고려, 5일전에 전화, 약속일시를
정하여 "제네바공항" 임의지점에서 접선하고
- 접선장소에 가서 왼손에 서류가방을 들고, 오른손에 여권을 들고 있으면
북한공작지도원 이모가 나타나기로 되어 있으며
- 접선후 "원박사 입니까", "이선생 입니다"고 하여 상호신원을 확인하기로
하였으며
<>대북보고에 대해 "열심히 활동하면 신문에 보도될 것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으므로 보고하는데 너무 구애받지 말라"고 하였음
<>또한 40대 김모 지도원은 국내에서 서경원과 검열간첩단의 접선방법의
일환으로
- 88년 10월말경 임무를 부여할 50대여자가 찾아갈 것이다.
그여자가 784-2187(의원회관 서경원 사무실)로 전화, "여기는 성당입니다"
"몇시에 만납시다"하면 서의원은 회색 긴팔 잠바를 입고 접선장소에 나가
검은색 양장차림에 스카프를 두른 50대여인을 만나라.
그여자가 "원박사 입니까? 이선생이 보내서 왔읍니다"라고 하면 공작원인줄
알고 만나 임무를 부여받으라는 지시를 받은 바 있고 (그후 나타난바는 없음)
- 이 자리에서 서경원은 88.7.27자로 국회에서 발생한 "국회수첩"과 자신의
투쟁경력등이 실린 잡지를 제공하였음
** 관광 견학을 통한 세뇌교육 **
<>서경원은 88.8.18 평양에 도착후 8.20까지 체류하면서 북한공작지도원의
안내를 받아 관광견학을 통한 세뇌교육을 받았음
<>서경원은 김일성 우상화 선전시설인 "만경대 김일성생가" "주체사상탑"
"항일기념탑" "김일성 항일유격지 보천보"등 20여개소를 관광 견학하면서
- 안내한 지도원에게 "참 역사가 깊은 곳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와서
구경했으면 좋겠다"고 언동하는등 김일성을 찬양하였으며
<>서경원이 농민투쟁을 주도해온 점을 감안, 농업실습연수원,종자개량연구소,
아파트식 농촌마을등 10여개소를 선정, 관광 견학하였음
<>한편 서경원은 김일성생가에서 표주박으로 물을 떠마시는 장면등 흑백사진
30여매를 기념 촬영하였음
** 귀환 경위 **
<>2박3일간 체북일정을 마친 서경원은 88.8.20 17:30경 "60대 김모"등
공작지도원들과 함께 승용차편으로 대동강변 초대소를 출발,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하여 미리와 있던 허담과 귀빈실에서 환담하다가
- 동일 18:00경 허담과 작별하고 "60대 김모", 임모, 조모등 북한공작
지도원 3명과 함께 북한 특별기에 탑승, 평양 순안비행장을 출발하였음.
<>서경원은 북한으로 향하는 특별기 내에서 **
- "김일성 주석님, 이번 평양을 방문하게 해 주셔서 고마움을 드립니다.
금후 한반도는 주석님이 말씀하신대로 전쟁이 사라지고 6,000만 동포가
하나되어 정말 이념을 초월하고 사람이 마음놓고 사는 세상이 되어 불신과
적대감이 없는 나라가 되고 전쟁을 종식하는 일들이 하나씩 이루어지리라고
확신합니다.
건강하십시요. 88.8.20 서경원 배"라는 내용으로 김일성에게 보내는
"감사의 편지"와
- 일금 50,000달러, 상기금액을 북한 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허담으로부터
인수하였기 정히 영수합니다. 88.8.20인수자 서경원"이라는 내용으로
허담에게 보내는 공작금 수령 영수증을 작성하여 "60대 김모"지도원에게
제출한 다음 동일 20:00 북경에 도착하였음.
<>서경원은 북한 공작지도원의 지령에 따라 입북사실을 은폐하고 알리바이를
조작하여 합법적으로 미국과 서독여행을 한후 돌아온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 북경에서 홍콩을 통해 직접 일본으로 들어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8.21
북경에서 스위스 항공편으로 홍콩을 거쳐 스위스 쥬리히에 도착, 북한
공작지도원들과 헤어진후 쥬리히에서 대한민국여권을 사용하여 단신
프랑크푸르트에 도착, 재독 북한공작원 성낙영, 이영준(46)등을 접촉하고
친북인물 정규명(60)가에서 1박하며 입북경위와 체북시 활동을 설명한 후
- 88.22 동경에 도착, 전 가농 평화통일 위원장 이건우(57)등 3명과 만나
8.24-9.4간 동경에서 개최된 "식량자급을 위한 국제 심포지움"에 참석한후
9.5입국하였음.
<>서경원의 북한 체류기간중 그를 안내한 바 있는 공작지도원 "60대 김모",
"40대 김모"는 "이제는 평양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므로 앞으로는 서독의
성낙영과는 일체 연락을 끊고 덴마크 코펜하겐의 북한대사관과 직접
연락하라"고 지시한 다음, 85.4이후 사용해온 "위장약(자금), 위장약1알
(1,000달러), 정신부(북한공작지도원 정모)등의 음어를 폐기하고 새로운
"연락및 접선음어조직"을 약정하였음.
<>통신연락은 "덴마크 코펜하겐 소재 북한대사관 전화번호 0045-1623927번의
이선생"을 통해 북한과 직접 연결되는 선을 유지하고
<>연락시 보안유지를 위해 "음어조직"을
- 서의원 -> 원박사
- 북한대사관 직원 -> 이선생
- 미화 1,000달러 -> 성경책 1권
- 김수환 추기경 -> 어른
- 추기경 방북추진상황 -> 성가대 연습
- 방북 -> 고향방문
- 시국이 안좋다 -> 머리가 아프다등과 같이 약정하였으며
<>"접선조직"으로
- 북한 공작지도원이 평양에서 오는 시간을 고려, 5일전에 전화, 약속일시를
정하여 "제네바공항" 임의지점에서 접선하고
- 접선장소에 가서 왼손에 서류가방을 들고, 오른손에 여권을 들고 있으면
북한공작지도원 이모가 나타나기로 되어 있으며
- 접선후 "원박사 입니까", "이선생 입니다"고 하여 상호신원을 확인하기로
하였으며
<>대북보고에 대해 "열심히 활동하면 신문에 보도될 것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으므로 보고하는데 너무 구애받지 말라"고 하였음
<>또한 40대 김모 지도원은 국내에서 서경원과 검열간첩단의 접선방법의
일환으로
- 88년 10월말경 임무를 부여할 50대여자가 찾아갈 것이다.
그여자가 784-2187(의원회관 서경원 사무실)로 전화, "여기는 성당입니다"
"몇시에 만납시다"하면 서의원은 회색 긴팔 잠바를 입고 접선장소에 나가
검은색 양장차림에 스카프를 두른 50대여인을 만나라.
그여자가 "원박사 입니까? 이선생이 보내서 왔읍니다"라고 하면 공작원인줄
알고 만나 임무를 부여받으라는 지시를 받은 바 있고 (그후 나타난바는 없음)
- 이 자리에서 서경원은 88.7.27자로 국회에서 발생한 "국회수첩"과 자신의
투쟁경력등이 실린 잡지를 제공하였음
** 관광 견학을 통한 세뇌교육 **
<>서경원은 88.8.18 평양에 도착후 8.20까지 체류하면서 북한공작지도원의
안내를 받아 관광견학을 통한 세뇌교육을 받았음
<>서경원은 김일성 우상화 선전시설인 "만경대 김일성생가" "주체사상탑"
"항일기념탑" "김일성 항일유격지 보천보"등 20여개소를 관광 견학하면서
- 안내한 지도원에게 "참 역사가 깊은 곳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와서
구경했으면 좋겠다"고 언동하는등 김일성을 찬양하였으며
<>서경원이 농민투쟁을 주도해온 점을 감안, 농업실습연수원,종자개량연구소,
아파트식 농촌마을등 10여개소를 선정, 관광 견학하였음
<>한편 서경원은 김일성생가에서 표주박으로 물을 떠마시는 장면등 흑백사진
30여매를 기념 촬영하였음
** 귀환 경위 **
<>2박3일간 체북일정을 마친 서경원은 88.8.20 17:30경 "60대 김모"등
공작지도원들과 함께 승용차편으로 대동강변 초대소를 출발,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하여 미리와 있던 허담과 귀빈실에서 환담하다가
- 동일 18:00경 허담과 작별하고 "60대 김모", 임모, 조모등 북한공작
지도원 3명과 함께 북한 특별기에 탑승, 평양 순안비행장을 출발하였음.
<>서경원은 북한으로 향하는 특별기 내에서 **
- "김일성 주석님, 이번 평양을 방문하게 해 주셔서 고마움을 드립니다.
금후 한반도는 주석님이 말씀하신대로 전쟁이 사라지고 6,000만 동포가
하나되어 정말 이념을 초월하고 사람이 마음놓고 사는 세상이 되어 불신과
적대감이 없는 나라가 되고 전쟁을 종식하는 일들이 하나씩 이루어지리라고
확신합니다.
건강하십시요. 88.8.20 서경원 배"라는 내용으로 김일성에게 보내는
"감사의 편지"와
- 일금 50,000달러, 상기금액을 북한 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허담으로부터
인수하였기 정히 영수합니다. 88.8.20인수자 서경원"이라는 내용으로
허담에게 보내는 공작금 수령 영수증을 작성하여 "60대 김모"지도원에게
제출한 다음 동일 20:00 북경에 도착하였음.
<>서경원은 북한 공작지도원의 지령에 따라 입북사실을 은폐하고 알리바이를
조작하여 합법적으로 미국과 서독여행을 한후 돌아온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 북경에서 홍콩을 통해 직접 일본으로 들어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8.21
북경에서 스위스 항공편으로 홍콩을 거쳐 스위스 쥬리히에 도착, 북한
공작지도원들과 헤어진후 쥬리히에서 대한민국여권을 사용하여 단신
프랑크푸르트에 도착, 재독 북한공작원 성낙영, 이영준(46)등을 접촉하고
친북인물 정규명(60)가에서 1박하며 입북경위와 체북시 활동을 설명한 후
- 88.22 동경에 도착, 전 가농 평화통일 위원장 이건우(57)등 3명과 만나
8.24-9.4간 동경에서 개최된 "식량자급을 위한 국제 심포지움"에 참석한후
9.5입국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