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부주의로 막대한 인명피해와 물질적 손실을 불러온 대한항공측의
무성의하고 소극적인 자세로 인해 피해당사자들과 그 주변으로부터 거센
항의와 비판을 받고 있다.
엄청난 과실에도 불구하고 사고경위와 원인규명에 대한 미온적 태도는
물론, 부상자들에 대한 비인간적 대우, 사망자 유족의 현지방문 주선에
대한 소극적 자세, 근로자계층이 주로 이용하는 중동노선에 대한 지속적인
푸대접, 그리고 이번 사고의 한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기도 한 무리한
연료절감과 조종사의 격무등은 지난 20년간 "우리의 날개"를 자처해 왔던
대한항공이 그동안 얼마나 제멋대로 날아 다녔는가를 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출범으로 민항독점시대가 막을 내린 마당에 대한항공도
이제는 고객중심의 영업등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단행해야 한다는 지적은
진작부터 있어 왔지만 이번 사고를 둘러싼 대한항공측의 태도는 그같은
요구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 사고원인 규명회피
항공기사고의 원인을 즉각 밝혀 내기란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며 책임소재
가 부상문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 극도의 신중을 기하는 것이
상식이나 대한항공은 이번 사고와 같은 대형참사를 내고도 국민적 의혹을
풀어줄 "제1성" 조차 내지 않고 있어 비난을 받고 있다.
모든 관련자료를 종합해 볼때, 조종사의 실수쪽으로 "심중"이 굳어지는
상황에서 대한항공은 현지에 급파된 국내 언론사 특파원들이 입원중인
김호준기장과 면담하려 하자 이를 노골적으로 제지하는가 하면 지난 27일
원인조사와 인명구호를 위한 특별기를 띄우면서도 기자들의 동승취재요청을
한사코 거부했다.
또 현지에 도착한 조사반과 김기장간의 면담내용을 공개하라는 요구도
"현지통신사정이 지극히 불량해 보고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핑계로 계속
따돌리고 있어 의혹을 더하고 있다.
** 부상자 대우
18시간의 장거리비행끝에 30일밤 늦게 김포공항에 도착한 생존자들은
한결같이 현지에서의 치료기간중 대한항공측으로부터 받았던 수모에 가까운
비인간적 대우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놨다.
불만의 핵심은 한결같이 대한항공측이 환자들을 "들여다 보지도 않은채"
외신기자들에 대한 홍보등에만 급급했다는 것.
부상자들이 치료받았던 트리폴리의 7개병원중 가장 많은 수가 입원했던
센트럴병원에 수용됐던 권혁희씨 (41. 대우엔지니어링 부장)등은 "사고발생
일인 27일부터 귀국길에 오른 30일까지 3일동안 대한항공 직원이라곤 구경
조차 못했다"면서 승무원들 조차 이 병원에서 숨진 여승무원 김소영양 (24)
을 지켜보며 "회사가 너무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리비아인들마저 찾아와 위로하는 판국에 정작 사고당사자인
우리 항공사측이 그처럼 무심한데 대해 차라리 수치스러웠다" "우리 돈
2,000원이면 코카콜라 1상자를 살수 있으나 거동이 어려워 병원 화장실
세면대의 물을 마셔야 했다"며 외국항공사가 이런 푸대접을 했더라면 오히려
덜 섭섭했을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특별기에 동승했던 대한항공의 고위간부는 "사고원인 조사와
유해처리등 워낙 일이 많다보니 다소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양해를
구했으나 공항주변에서는 특별기가 떠날 당시 조중훈 대한항공회장이 "사람이
무엇보다 귀하다. 현지에 도착하면 환자를 보살피는 일에 총력을 쏟겠다"고
말한 점을 상기시키며 대한항공의 처사를 비판하고 있다.
** 유족파견에 대한 무성의
대한항공은 현지에 가서 시신이라도 확인하게 해 달라는 사망자 유족들의
요구를 여러 이유를 들어 미루고 있다.
대한항공이 제시하는 이유는 <>리비아의 입국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리비아가 혁명 20주년 기념일 (9월1일)을 앞둔 축제분위기인데다 사망자를
당일에 매장하고 호곡도 않는 그들의 풍습에 비추어 우리 유족들이 현지에서
보일 행동이 리비아측에 결례가 되고 <>007기나 858기 사고처럼 시신도
찾지 못해 현장에서나마 장례를 치러야 할 상황도 아닌데다 현지의 기후,
숙소문제등이 지극히 불편하다는 등이다.
그러나 공항관계자들은 국가간 항공기 취항은 곧 "긴급시 상대국 인력의
즉시 입국허용을 전제로 하는 준외교관계"라는 점을 들어 리비아의 입국절차
는 문제되지 않을 것으로 전하면서 대한항공측이 난색을 표하는 사실상의
이유로 <>처참한 시신의 모습등을 실제로 목격할 경우 유족들이 과격해지고
<>유족들의 현지방문을 위해 특별기를 차출하려면 이미 사고로 비행기수가
줄어든 형편에 여름휴가의 항공수요가 절정을 이룬 시점에서 어려움이
따를 것을 우려하는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그간 유족측과 현지방문문제를 놓고 수차 협의를 거듭하면서
<>여권미소지자를 위한 여행증명서 발급이 어렵고 <>유족측으로부터 방문
희망자 명단을 제출받지 못했다는등의 납득키 어려운 이유를 들어 미루어
오다 유족들의 강력한 요구에 부딪히자 사망자 1인당 유족2명 방문이라는
원칙에 합의, 31일 상오 최종명단을 넘겨 받았으나 되도록 피하거나
미루겠다는 태도가 역력하다.
** 중동노선에 노후한 DC-10기 집중배치와 무리한 비행조건
타기종에 비해 사고빈도가 월등 높고 노후한 DC-10기를 주로 서민층인
근로자들이 이용하는 중동노선에 투입해 온 것도 그간 대한항공이 불만을
산 한 요인.
이번에 사망자로 발표됐다 뒤늦게 생존자로 밝혀진 김영수씨 (37.
대우 형틀목공) 가 국내휴가를 마치고 리비아현장으로 떠나면서 가족들에게
"DC-10기를 타기가 정말 두렵다"고 말했다는 사실에서 보듯 이 기종의
탑승객들은 늘 막연한 불안감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대한항공은
유독 중동노선에 이 기종을 "애용"해왔다.
이와 함께 조종사들의 힘겨운 근무여건과 연료비절감을 위한 무리한
비행방식도 차제에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83년 007기 미사일 피격사건 이후 "대한항공이 운항경비 절감을 위해
연료를 적게 싣고 다니면서 짧은 항로를 선택, 무리한 비행을 한다"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고 항공업계에서는 이를 공공연한 비밀로 알고 있지만 이번의
사고기 역시 연료를 적게 실었기 때문에 착륙을 강행하다가 변을 당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 사고 비행기 착륙강행은 연료부족탓일 가능성도
익명을 요구하는 대한항공의 한 고위간부는 "트리폴리 관제탑이 시계
불량으로 착륙을 금지한 것이 사실이라면 김기장은 연료부족으로 회항이
불가능해 무리한 착륙을 시도했을지 모른다"면서 "기상조건에 문제가 없었다
해도 어쨋든 연료는 빠듯한 상태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보도는 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9월 서울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집단행동을 일으키려 했던 것도 이같은 회사의 무리한
지시에 대한 반발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이번 사고가 대한항공의 평소 행태와
전혀 무관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당시 조종사들은 "월 90시간, 연1,000시간으로 제한된 조종사 근무규정
을 지키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려다 한 중역이 제지하자
무표정하게 "지킨다"고만 답변한 적도 있다.
사고의 원인이 무엇이건, 사후처리가 어떠했건, 대항항공은 그 성격상
사기업의 차원을 넘어 국민 모두의 것임을 깊이 인식, 이제라도 그들이
자처하는 명실상부한 "우리의 날개"가 되기 위해 과감한 체질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이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