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원 간첩사건등 수사결과발표...검찰에서 밝혀진 새로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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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평민당총재 관련부분...서의원의 북괴공작금중 1만달러 받아 ***
<> 서경원으로부터 허담제공의 북괴공작금 5만달러중 1만달러 수수
- 서경원이 88.8.18-20사이에 밀입북하여 김일성 및 허담과 면담하고
허담으로부터 김수환 추기경의 방북을 추진하라는 등의 지령과 함께
공작금으로 5만불을 받아 일본을 거쳐 9.5 귀국한 후
- 그때부터 2-3일 지난 9월초순경 김대중총재에게 귀국보고를 하면서
자신이 북한에서 받아온 공작금 일부를 제공하여 환심을 사 당내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일본에 체류할때 아사히신문에 한국에서의 농민운동
활동상에 관하여 인터뷰한 기사가 크게 실신 사실을 과시할 목적으로
위 공작금중 1만불(100불권 100매) 한다발을 흰종이에 싸서 아사히신문과
함께 들고 총재실로 찾아가 귀국보고를 하고 김대중총재에게 신문을
제시하자
- 김대중총재는 아사히신문의 기사를 읽어보고 "아사히신문은 일본에서
큰 신문인데 히트쳤구만"이라고 말하면서 칭찬을 하였고 이어서 서경원이
미리 준비해 간 북괴공작금 1만불을 "조그만 성의입니다"고 말하면서
제공하자 김대중총재는 그 돈을 수수한 사실이 있음이 밝혀졌다.
<> 89.4중순 서경원으로부터 직접 밀입북사실을 보고받음.
- 서경원이 88.9.5귀국한 후 자신의 방북사실을 김수환 추기경 등 여러곳에
발설해 왔으면서도 김대중총재에게는 정치적 부담만 줄 뿐 이를 수용
대처할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여 미루어 오다가 김대중총재를
수행하여 유럽을 순방중이던 89.2중순경 헝가리 부다페스트 포룸호텔에서
북한을 취재하고 싶어하는 한겨레신문 유재걸기자에게 우연히 자신의
방북사실을 이야기 한 사실이 있고
- 그후 같은해 3.하순경 문익환목사 밀입북사건이 있은 후 윤재걸기자가
찾아와 전번에 이야기한 방북사실에 대하여 집요하게 인터뷰요구를 하자
하는 수 없이 이에응한 다음 자신의 방북사실이 보도되었을 때 발생할
파문을 걱정한 나머지 총재에게 미리 보고하여 두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89.4.중순 16:00경 여의도백화점 빌딩내에 있는 평민당 중앙당
총재실로 찾아가 김대중총재를 면담하고 자신이 지난해 8월 해외여행시
8.18부터 8.20까지 사이에 북한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김일성과 허담을
만났으며 그때에 김수환추기경의 방북문제, 남북 종자교류문제 등에
대한 대화가 있었다는 취지의 보고를 했음.
- 김대중총재는 입북한 사실이 있다는 말을 할 때는 상당한 관심과 흥미를
보이다가 서경원으로부터 이미 한겨레신문 윤재걸기자와 인터뷰를 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갑자기 상기된 표저이을 지으면서 기자회견을 혼자 결정한
점에 대하여 심한 질책을 하면서 보도를 중단할 것을 강력히 지시한 사실이
있음이 밝혀졌다.
- 따라서 김대중총재는 서경원의 밀입북사실을 89.6., 21 김원기 원내총무로
부터 보고를 받고 처음 알게 되었다고 주장하나 그보다 훨씬 이전인 89.4.
중순경에 이미 서경원으로부터 직접 보고받아 알고 있었음이 명백해 졌음.
<> 서경원이 밀입북한 목적으로 출국할 때 여비로 1,000불 제공
- 서경원이 밀입북하여 김일성을 면담할 목적으로 출국하기 직전인 88.8.
초순 당시 여의도 대하빌딩 9층에 있던 평민당 중앙당 총재실에서 서경원
으로부터 원자로 안전문제와 농업관계 자료수집차 출국한다는 보고를 받고
여비 명목으로 미화 1,000불을 제공한 사실이 있음이 밝혀졌음.
<> 이상과 같은 사실은 서경원의 수차에 걸친 소상한 자백과 이를 뒷받침하는
일부 상피의자 등의 진술 및 압수된 증거물에 의하여 밝혀졌다.
<> 김원기 전 원내총무 관련부분
<> 89.4.중순 서경원의 밀입북사실 확인
- 김원기 전 원내총무는 89.6.21 이길재 평민당대외협력위원장으로부터
서경원의 밀입북사실을 보고받기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보다 훨씬 이전인 89.4.중순 국회의사당 평민당 원내총무실로
서경원을 불러 서경원에게 "총재에게 들었는데 당신이 밀입북한 것이
사실이며 한겨레신문 기자와 인터뷰한 것이 정말이냐"고 다그쳐 서경원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크게질책하면서 "앞으로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치
말라", "인터뷰를 즉시 취소하라"고 지시를 한 사실이 있음이 밝혀졌으며
따라서 김원기 전 원내총무도 89.4.중순경 이미 서경원의 밀입북사실을
알고 있었음이 명백해졌음.
<> 서경원이 밀입북 목적으로 출국할 때 여비 50만원 제공
- 서경원이 밀입북하여 김일성을 면담할 목적으로 출국하기 직전인 88.8.
초순 국회의사당 안에 있는 평민당 원내총무실에서 서경원으로부터 원자로
안전문제와 농업관계 자료수집차 출국한다는 보고를 받고 여비명목으로
50만원을 제공한 사실이 있음이 밝혀졌다.
<> 이상과 같은 사실 역시 서경원의 수차에 걸친 소상한 자백과 이를
뒷받침하는 일부 상피의자 등의 진술 및 압수된 증거물에 의하여 밝혀졌다.
<> 비서 방형식, 운전기사 오동철의 불고지 및 증거인멸
<> 방형식은
89.4.중순경 종로3가 소개 식당에게 김용래와 식사를 하던중 동인으로
부터 서경원의 밀입북사실을 들은 사실이 있고
<> 오동철은
89.4.중순경 동인이 운전하는 차에 퇴근하는 김용래를 태워 가던중
김용래로부터 서경원의 밀입북사실을 들은 사실이 있음.
<> 89.6.26 방병식이 서경원으로부터 입북시 찍은 사진을 없애라는
전화지시를 받고 그 다음날 의원회관에 있는 서경원사무실로 출근하여
방형식, 오동철, 김용래등 3인이 상의한 후 그곳 책장안에 있던 서경원이
입북시 찍은 사진 20여매와 필림2통을 방형식, 오동철이 파기하여
증거를 인멸한 사실이 있음이 밝혀졌다.
<> 서경원으로부터 허담제공의 북괴공작금 5만달러중 1만달러 수수
- 서경원이 88.8.18-20사이에 밀입북하여 김일성 및 허담과 면담하고
허담으로부터 김수환 추기경의 방북을 추진하라는 등의 지령과 함께
공작금으로 5만불을 받아 일본을 거쳐 9.5 귀국한 후
- 그때부터 2-3일 지난 9월초순경 김대중총재에게 귀국보고를 하면서
자신이 북한에서 받아온 공작금 일부를 제공하여 환심을 사 당내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일본에 체류할때 아사히신문에 한국에서의 농민운동
활동상에 관하여 인터뷰한 기사가 크게 실신 사실을 과시할 목적으로
위 공작금중 1만불(100불권 100매) 한다발을 흰종이에 싸서 아사히신문과
함께 들고 총재실로 찾아가 귀국보고를 하고 김대중총재에게 신문을
제시하자
- 김대중총재는 아사히신문의 기사를 읽어보고 "아사히신문은 일본에서
큰 신문인데 히트쳤구만"이라고 말하면서 칭찬을 하였고 이어서 서경원이
미리 준비해 간 북괴공작금 1만불을 "조그만 성의입니다"고 말하면서
제공하자 김대중총재는 그 돈을 수수한 사실이 있음이 밝혀졌다.
<> 89.4중순 서경원으로부터 직접 밀입북사실을 보고받음.
- 서경원이 88.9.5귀국한 후 자신의 방북사실을 김수환 추기경 등 여러곳에
발설해 왔으면서도 김대중총재에게는 정치적 부담만 줄 뿐 이를 수용
대처할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여 미루어 오다가 김대중총재를
수행하여 유럽을 순방중이던 89.2중순경 헝가리 부다페스트 포룸호텔에서
북한을 취재하고 싶어하는 한겨레신문 유재걸기자에게 우연히 자신의
방북사실을 이야기 한 사실이 있고
- 그후 같은해 3.하순경 문익환목사 밀입북사건이 있은 후 윤재걸기자가
찾아와 전번에 이야기한 방북사실에 대하여 집요하게 인터뷰요구를 하자
하는 수 없이 이에응한 다음 자신의 방북사실이 보도되었을 때 발생할
파문을 걱정한 나머지 총재에게 미리 보고하여 두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89.4.중순 16:00경 여의도백화점 빌딩내에 있는 평민당 중앙당
총재실로 찾아가 김대중총재를 면담하고 자신이 지난해 8월 해외여행시
8.18부터 8.20까지 사이에 북한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김일성과 허담을
만났으며 그때에 김수환추기경의 방북문제, 남북 종자교류문제 등에
대한 대화가 있었다는 취지의 보고를 했음.
- 김대중총재는 입북한 사실이 있다는 말을 할 때는 상당한 관심과 흥미를
보이다가 서경원으로부터 이미 한겨레신문 윤재걸기자와 인터뷰를 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갑자기 상기된 표저이을 지으면서 기자회견을 혼자 결정한
점에 대하여 심한 질책을 하면서 보도를 중단할 것을 강력히 지시한 사실이
있음이 밝혀졌다.
- 따라서 김대중총재는 서경원의 밀입북사실을 89.6., 21 김원기 원내총무로
부터 보고를 받고 처음 알게 되었다고 주장하나 그보다 훨씬 이전인 89.4.
중순경에 이미 서경원으로부터 직접 보고받아 알고 있었음이 명백해 졌음.
<> 서경원이 밀입북한 목적으로 출국할 때 여비로 1,000불 제공
- 서경원이 밀입북하여 김일성을 면담할 목적으로 출국하기 직전인 88.8.
초순 당시 여의도 대하빌딩 9층에 있던 평민당 중앙당 총재실에서 서경원
으로부터 원자로 안전문제와 농업관계 자료수집차 출국한다는 보고를 받고
여비 명목으로 미화 1,000불을 제공한 사실이 있음이 밝혀졌음.
<> 이상과 같은 사실은 서경원의 수차에 걸친 소상한 자백과 이를 뒷받침하는
일부 상피의자 등의 진술 및 압수된 증거물에 의하여 밝혀졌다.
<> 김원기 전 원내총무 관련부분
<> 89.4.중순 서경원의 밀입북사실 확인
- 김원기 전 원내총무는 89.6.21 이길재 평민당대외협력위원장으로부터
서경원의 밀입북사실을 보고받기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보다 훨씬 이전인 89.4.중순 국회의사당 평민당 원내총무실로
서경원을 불러 서경원에게 "총재에게 들었는데 당신이 밀입북한 것이
사실이며 한겨레신문 기자와 인터뷰한 것이 정말이냐"고 다그쳐 서경원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크게질책하면서 "앞으로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치
말라", "인터뷰를 즉시 취소하라"고 지시를 한 사실이 있음이 밝혀졌으며
따라서 김원기 전 원내총무도 89.4.중순경 이미 서경원의 밀입북사실을
알고 있었음이 명백해졌음.
<> 서경원이 밀입북 목적으로 출국할 때 여비 50만원 제공
- 서경원이 밀입북하여 김일성을 면담할 목적으로 출국하기 직전인 88.8.
초순 국회의사당 안에 있는 평민당 원내총무실에서 서경원으로부터 원자로
안전문제와 농업관계 자료수집차 출국한다는 보고를 받고 여비명목으로
50만원을 제공한 사실이 있음이 밝혀졌다.
<> 이상과 같은 사실 역시 서경원의 수차에 걸친 소상한 자백과 이를
뒷받침하는 일부 상피의자 등의 진술 및 압수된 증거물에 의하여 밝혀졌다.
<> 비서 방형식, 운전기사 오동철의 불고지 및 증거인멸
<> 방형식은
89.4.중순경 종로3가 소개 식당에게 김용래와 식사를 하던중 동인으로
부터 서경원의 밀입북사실을 들은 사실이 있고
<> 오동철은
89.4.중순경 동인이 운전하는 차에 퇴근하는 김용래를 태워 가던중
김용래로부터 서경원의 밀입북사실을 들은 사실이 있음.
<> 89.6.26 방병식이 서경원으로부터 입북시 찍은 사진을 없애라는
전화지시를 받고 그 다음날 의원회관에 있는 서경원사무실로 출근하여
방형식, 오동철, 김용래등 3인이 상의한 후 그곳 책장안에 있던 서경원이
입북시 찍은 사진 20여매와 필림2통을 방형식, 오동철이 파기하여
증거를 인멸한 사실이 있음이 밝혀졌다.